내년엔 저기 서 보자
[깜언 골프 6] 나이 마흔, 남자 셋, 골프
“좀 이따 벼 벨 거야.”
추석 연휴 전날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았다. 원래 다음날 하기로 한 일인데, 갑자기 한 시간 후 일이 되었다. 벼 수확할 때 농부가 하는 일은 별로 없다. 콤바인이 와서 베고, 트랙터 트레일러가 실어 간다. 낫을 들고 춤만 춰도, 금방 끝나는 일이다. 논도 잘 말려 놓고, 둑에 풀도 잘 깎았으며, 쓰러지지도 않았다. 긴 장마에 수확을 줄어도 추석 전에 벼농사가 끝나는가 싶었다.
콤바인이 고장 나고 일이 늦춰지면서 어느덧 해가 졌다. 논에 들어갈 때 콤바인 들어갈 자리를 낫으로 베 놔야 한다. 콤바인 조명에 의지해 저녁을 먹고 나니, 가로등 하나 없는 벌판,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낫을 들고 난감해하고 있는데, 뒤에서 살포시 빛이 비쳤다. 돌아보니 한탄강 CC에서 골프장 밝히는 조명이다. 덕분에 낫질은 잘 끝났다. 가만히 골프장을 바라봤다.
그래, 올해는 여기서 보지만, 내년엔 저기 서 보자! 콤바인이 어둠을 뚫고 열심히 벼를 벨 때, 박하림프로의 유튜브 레슨을 보고 배운 것을 정리했다.
1. 클럽(골프채)을 잡을 때, 최대한 살짝 쥔다. 손안에 공간이 있어야 회전이 잘 되고, 힘을 주지 않아야 스윙이 잘 된다.
2. 어드레스(스윙 준비 동작)를 할 때, 클럽을 올려 내리다가 팔과 가슴이 닿는 곳에 멈춘다. 그곳을 잘 기억해야 스윙 궤도가 일정하다.
3. 허리를 숙일 때 발끝으로 앞으로 기운 무게 중심을 확인한다. 기마자세 하다가는 ‘똥싸나’ 소리 듣는다.
4. 허리에 무리한 힘을 주지 않는다. 힘을 주는 듯 마는 듯 가벼운 긴장을 느끼면 된다.
5. 코킹(클럽을 들어 올리는 동작)을 할 때, 오른손 손목을 들기보다, 왼손을 밀어 팔과 클럽을 수직으로 만든다. (자세한 건 박프로에게!)
사실 나는 골프 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논에 혼자 일할 때 강 건너 사람들 골프 치는 모습 보면 ‘팔자 좋다’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런 사람이 있지만, 나처럼 죽어라 일하고, 일 년에 한 번 친구들과 라운딩 하는 재미를 맛보고 싶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열심히 농사짓고, 열심히 연습해 저곳에서 한탄강 너머 이쪽 논까지 공 한 번 쳐야지! _ 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