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2호는 마음이 참 곱다. 1호가 엄마 옆에 딱 붙어 갈 때, 2호는 멈칫멈칫하다 나에게 온다. 맛있는 걸 먹을 때도, 내가 그윽한 눈빛을 보내면, 1호는 쳐다보지도 않지만, 2호는 “아빠 먹어!”라며 자기 걸 내어 준다. 유치원에서도 2호는 양보의 아이콘이다. 친구들이 뭐 달라고 하면, 자기가 하던 걸 준단다. 선생님들은 2호가 ‘빠지는 것 하나 없는 아이’라고 칭찬한다.
지난주, 엄마가 1호만 데리고 수업에 가고, 2호는 혼자서 스쿨버스를 타고 왔다.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에 두꺼비 한 마리 있어 보여주면 좋아하겠다 싶었다. 귀여운 두꺼비를 보고 신난 아이는 곧 ‘길 밖으로 보내 주자.’고 했다. 엄마가 차 끌고 오다가 밟으면 안 된단다. 막대기를 들고 똥꼬를 슬슬 간질이니 두꺼비는 엉금엉금 풀숲으로 기어갔고, 아이는 그제야 웃었다.
할머니 집에서 우리 집으로 오려는데, 피곤했는지, 차를 타고 가고 싶다고 했다. 지금 차가 없으니, 기분도 별로인 것 같아, 아빠가 업어주겠다 하자, “아니야, 아빠 허리 아프잖아.”라며 사양했다. 나아서 괜찮다고 했더니, “정말 다 나은 거야? 아빠 아파서 걱정 많이 했는데. 다행이다.”라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도 2호는 아빠에게 업히지 않고, 뚜벅뚜벅 걸었다.
참 고운 아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아이의 어색한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 아빠를 위해서 뭔가를 포기하는데, 자기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환한 웃음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문득 ‘양보’가 아이를 누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치원에서 애들이 양보 안 해. 나는 하는데. 그래서 힘들 때가 있어.”라는 아이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어제 나는 말했다.
“은산아, 앞으로 양보하지 마라. 너 하고 싶은 거 해.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돼!”
아이의 얼굴에서 나의 지난날을 보았다. ‘착한 사람’으로 살았지만, 마음은 허한…. 양보를 하면서 주변을 부드럽게 했지만, 거기에 ‘나’는 없었다는 것을 마흔이 넘어 알았다. 나는 2호가 욕심쟁이들의 표적이 되거나, ‘나’로 살지 못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법과 양심에 근거해 마음껏 살면서 ‘참 자아’를 찾으면 좋겠다. 오늘도 혼자 올 아이에게 말해야지. “양보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