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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효원 Dec 28. 2020

인생은 숙제가 아니야

[깜언 골프 23] 나이 마흔, 남자 셋, 골프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돌이켜보면, 내 또래 대부분 그렇듯, 나 또한 인생을 숙제로 여겼다. 늘 해야 할 일에 쫓겼고, 일상에 여백이 생기면 불안했다. 태생이 쫄보로 태어난 나, 개천용이 될 것도 아닌데, 어설프게 경쟁의 회오리 끝에 발을 들여놓고, 늘 힘겨워했다. 어떤 시인을 현실을 ‘소풍’이라 했는데, 부러우면서도, 비현실적이라 여겼다. 이제는 충분히 지쳤고, 나도 소풍처럼 살기로 했다.     


농부의 겨울은 내 생일(12월 2일)을 기점으로 시작한다. 돌아보면 정리할 게 아직 많지만, 내년 봄도 있으니, 눈 딱 감고 클럽을 잡았다. 하루 5시간 빈 스윙을 했다. ‘팔자 좋다.’ 빈정거림이 들리는 것 같지만, 예전 같았으면 폭풍 변명을 했겠지만, 이제는 쿨하게 ‘나 팔자 좋소!’ 막대기 하나 들고 내 몸으로 향하는 소풍은 언제나 즐겁다. 나날이 줄어드는 뱃살은 덤이라오!     


정말 놀랍게도, 1일 1 깨달음이 있다.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답을 찾았다 생각하고, 공치러 가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좌절감, 하지만 좌절을 하면 할수록 얻는 게 있다. 어드레스 할 때 몸에 긴장감이 있어야 하고, 백스윙 때엔 배가 비틀어지는 게 느껴져야 한다. 왼팔은 곧게 옆으로 펴지고, 아이언과 드라이버를 칠 때 체중 이동의 원리도 어느 정도 알게 됐다.     


하나를 깨우치면 늘 드는 생각, ‘도대체 어제는 어떻게 친 거야?’ 엉터리도 이런 엉터리가 없다고 느껴지지만, ‘아니야, 어제는 그게 최선이었어. 다 좋아지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 아니겠어?’ 마음을 토닥토닥. 행여나 폼이 흐트러질까, 예전의 습관을 흉내 내 보지도 않는다. 언젠가, 아니 당장 내일이라도 오늘의 내 모습을 후회할 수 있지만, 지금은 묵묵히 휘두를 때.     


문득 김사장, 김차장을 처음 만난 1995년 의정부 고등학교 1학년 8반 교실이 떠오른다. 칠판 위에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란 급훈이 떡하니 붙어있다. 그때는 열심히만 하면 그렇게 될 줄 알았는데, 이제야 알았다. 인생을 숙제로 생각하면, 매일 새로워질 수 없다는 것을…. 할 일을 밀어내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에 다가갈 때 ‘나’는 새로워진다. 내일이 궁금해진다. _ 안기자


하림: <소풍>

https://youtu.be/VV1aMxsPf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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