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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효원 Jan 18. 2021

멘탈 붕괴, 그 후….

[깜언 골프 28] 나이 마흔, 남자 셋, 골프

“순위 조정해야겠는데?”     


참 소박하기도 하지, 새해 그토록 가고 싶은 곳이 파주 인도어 연습장이라니. 지난 한 달 얻은 깨달음을 확인하고 싶었고, 나름의 방법을 김사장과 나누고 싶었으며, 무엇보다, 영하 20도에도, 눈이 오는 날에도 혼자서 연습한 친구 곁에 같이 서고 싶었다. 특히 막내를 위해 ‘골프 8도’를 만들었는데, 일단 몸으로 증명을 하고 주둥이를 까야지. 빈 스윙의 달인 입장이요!     


꿈을 꾸는 것 같다. 이 시간에 밖에 있는 것도 그렇고, 연습장 분위기도 그렇고, 무엇보다 더럽게 안 맞는 게 그렇다. 아, 차라리 꿈이라면 더 좋았을 것을, 그렇게 열심히 휘둘렀는데, 치는 족족 슬라이스에 비거리는 오히려 줄었다. 김사장은 해맑은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실력이 줄었어?! 순위 조정해야겠는데?” 자존심은 둘째 치고, 그동안 내복에 적신 땀이 얼마인데.     


드라이버로 만회할 테야! 도와줘요, 미상 씨! 휙, 깡! 역시 골프는 클럽이 치는 게 아니다. 미상 씨도 어쩔 수 없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45도로 꺾이는데, 내 마음도 같이 꺾였다. 김사장이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안기자, 우리 친구 하자.” “그래, 반갑다 친구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적막할 수 없었다. 그날 밤, 상처 난 미상 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울었다.     


다음 날, 하루 종일 앓아누웠다. 빈 스윙만으로는 안 될 것 같아, 공을 직접 치고 싶은데, 이미 50일 육아 대장정은 시작됐고…. 아동용 골프채를 사서 2호를 꼬셨다. “아빠랑 매일 골프 치러 갈까?” 순수한 영혼의 아이는 단번에 오케이. 눈 오는 날, 아이는 기세등등 나섰다. 하지만 잘 맞을 리가 없지. 얼마 치지도 않고는 춥고 배고파, 집에 가자며, 동상 타령을 불렀다.     


눈이 날리는 길에서 아이에게 말했다. “처음엔 안 맞는 게 당연한 거야. 아빠가 늘 말하잖아. 못해야 잘하고, 져야 이긴다고. 알지?” 아직 자신의 미숙함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에게 늘 하는 말이다. 그러다 문득, 이 말이 필요한 건 2호가 아니라 나구나 싶다. 누가 당장 잘 치라고 한 것도 아닌데, 혼자 풀이 죽었구나. 그렇게 4일 만에 골프 열정은 완벽 부활했다. _ 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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