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효원 Feb 11. 2021

천 개의 화살

<찬실이는 복도 많지>(김초희, 2020)

찬실이는 복도 없지. 어느덧 나이 마흔인데,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영화제작자로서 그동안 호흡을 맞춰오던 감독이 갑자기 죽고, 일이 뚝 끊겼다. 사랑 한 번 제대로 못 해본 인생 서러워, 이번엔 봄날이 오나 싶은 남자를 만났는데, 여전히 겨울이다. 분위기 파악하지 않고 할 말 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 미워할 심성도 못 된다. 삶의 무게를 오롯이 혼자 짊어질 수밖에….     


찬실이(강말금)가 쏜 화살은 과녁을 족족 빗나간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자꾸 그러니 이제는 활을 들 힘도 없다. 성경에서 ‘죄’는 ‘목표에서 빗나감’의 어원을 갖고 있다. 교회를 욕하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만, 이것은 비단 기독교의 문제만이 아니다. 인생의 틀을 정하고 그에 닿지 못하면 죄인 취급하는 게, 지금 우리 아닌가. 눈앞의 성공을 복, 은혜로 여기는 것도 그렇다.     


수학을 싫어하면서도, 우리는 일대일 대응의 강박이 있다. 열심히 준비했으면, 좋은 대학, 직장에 가야 한다 생각하고, 내가 사랑하면 그 사랑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고? 못 이룬 사람은 간절하지 않았단 말인가! 인생은 일대일 대응이 아니다.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된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다.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생사람 잡을 뿐.     


찬실이가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할머니(윤여정)가 시 쓰기를 도와달라고 할 때 그녀는 말한다. ‘아무거나 쓰면 돼요. 아무렇게나 쓰라는 건 아니에요.’ 할머니에게 한 말을 자신에게 적용했다면, 그녀가 그토록 힘들지 않았을 텐데. <여인의 향기>에서 알 파치노도 말한다. ‘꼬이면 꼬이는 대로 발을 내딛는 게 탱고다.’ 물론 일대일 대응의 현실에서 잊히기 쉬운 말이다.     


그녀는 힘든 시간을 견뎠고, 다시 일어섰다.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어요.’란 말은 감동적이다. 찬실이를 일으킨 것은 그녀 자신이다. 지친 상황에서도 숙제를 도와달라는 할머니의 청을 거절하지 않는다. 또 그녀에겐 힘들게 이삿짐을 날라주는 동료와 그녀를 잘 아는 동생이 있다. 덕분에 그녀는 천 개의 화살을 쥐었다. 안 맞으면 또 쏘면 되지. 찬실이는 복도 많지.


좋은 사람도 상처줄 수 있고, 같지 않아도 잘 지낼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좋은 사람 아니에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