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즐러(울리히 뮤흐)는, 동독 공산당 관점에서 볼 때, 이상적 인물이다. 투철한 사명의식으로 교수와 당 간부 역할을 잘 수행한다. 친구처럼 승진에 목말라 있지 않으며, 상관처럼 권력을 이용해 부당한 짓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일상은 정작 더없이 말라비틀어져 있다. 콜걸을 불러 관계를 맺고 허탈한 것보다 더 안타까운 건 홀로 한 접시로 해결되는 저녁 식사….
그 모습을 보며 20대, 천 원에 튀김 다섯 개로 한 끼를 때우던 내가 떠올랐다. 그때는 뭣이 중한지, 먹는 것 등 내 욕망을 억누르는 게 당연하다 여겼다. ‘나’보다 ‘세계 평화’가 중요했고, 늘 현실의 천국, 즉 이상향을 꿈꿨다. 그렇게 20년이 지나고 나서 겨우 알았다. 세상에 그런 건 없다는 것을, 말이 있다고 해서 실체가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헛된 꿈을 꾸었단 것을….
느낌이 안 좋은 드라이만(세바스티안 코치)을 감청하며, 비즐러는 말 너머의 삶을 만난다. 평등 대신 파티, 규칙보다 시, 동지보다 사랑. 처음에는 타인의 삶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다가, 긴 침묵의 강을 건너,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모두 행복한 삶을 꿈꾸는 세상에서 불행하기만 했던, 어제와 오늘, 내일이 달라질 게 없었던 그는 새 운명에 자신을 던진다.
처음엔 주인공이 변심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납득이. 그토록 철저한 사람이 갑자기? 그러다 문득 그토록 철저했기에, 그렇게 변할 수 있겠다 싶었다. 세게 던질수록 공은 벽에 부딪혀 강하게 튀어나올 테니까.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 그는 서독으로의 탈출도 꿈꾸지 않는다. 왜? 그곳의 자유 또한, 말(허상)일 수 있기에. 우체부가 된 그가 어떻게 저녁을 먹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