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혼자 컵라면을 먹는 사람은 필경 사연이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 강릉까지 갔으면 회에 소주를 먹던가, 맛집을 찾아야지. 그때 박삼수 기자(배성우) 앞에 놓인 삼각 김밥 두 개, 경황이 없는 중에 아버지를 죽인 소녀가 내민 감사의 표시다. 손가락질이 넘칠 때도 그녀의 집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없었다. 사내는 말했다. ‘내 할 일 한 거야. 나 좋은 사람 아니야.’
참 희한한 일이다. 다 착하게 사는 거 아니면서, 다 착하게 살라고 한다. ‘착하다’의 성인 버전은 ‘성공하다’ 정도?! 나도 이유도 모르고, 이유를 모르니 절대적으로 착하게 살려고 했다. 더 그렇게 생각한 건, 10년 전 병원 생활. 수십 명의 의료진이 이 몸 하나 살리려고 애썼다. 사람들이 그렇게 고생해서 살려 놨는데, 나도 ‘살리는 손’이 되어 착하게 살겠다 다짐했다.
30대를 돌아보면, 그렇게 착할 수 없다. 음주가무의 세계에 빠져 산 20대와 비교하면 환골탈태. 좋기도 하고, 보람도 느꼈다. 사람들은 ‘이런 좋은 사람이 이 시골에!’라며 감탄했다. 그런데 정작 나는 구멍이 났는지 마음이 허해져 갔다. 특별히 스트레스를 받을 일은 없는데, 그리 대단한 일은 하지는 않았기에, 하지만 워낙 신경 쓰는 일이 많아, 화낼 곳 없어 화가 쌓였다.
그렇게 답답한 지난 3년을 보내고, 낯설기만 한 나이 마흔셋의 새벽, 다짐한 게 있다. ‘나 좋은 사람 아니에요.’ 이제는 좋은 사람보다 ‘나’로 살고 싶다. 나의 기분대로, 나의 리듬대로, 춤추듯, 여행하듯. 20대 때 해금연주자 꽃별의 <사월>을 들으며, 도시 거리를 춤추듯 걸었던 것처럼, 나비처럼 살랑살랑. 거친 도전에 예상되지만, 나를 찾는데 그 정도 대가는 치러야지.
마음속 억눌린 착한 아이가 물었다. ‘진짜 그렇게 살 거야? 새로운 방향이 있어야지.’ ‘응, 있어, 걱정 마. 나, 불편하지 않은 사람 될 거야, 박태용 변호사(권상우) 처럼.’ 억울한 누명을 쓴 사내가 사람들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 그 앞에서는 소리도 지른다. 사람들이 속내를 내비치고, 때로는 소리도 지를 수 있는, 그런 사람 되고 싶다. 나 그렇게 살(아 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