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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효원 Apr 08. 2021

미상 씨가 돌아왔다

[깜언 골프 31] 나이 마흔, 남자 셋, 골프

미상 씨, 반가워요! 이 얼마만이죠? 제가 택배를 보낸 지 열하루 만이네요. 갑갑한 상자에 갇혀 던져지고, 아픈 클럽들 사이에 있는 동안 많이 무서웠죠? 네? 제가 미상 씨를 잡을 때만큼 무서운 일은 없다고요? 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네요. 제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시행착오라고 생각했는데, 미상 씨는 참 많이도 힘들었겠어요. 다시 한번 사과해요. 돌아와 줘서 고마워요.


그동안 좀 늘었냐고요? 매우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해요. 미상 씨 머리를 다치게 한 뒤땅은 많이 줄었는데, 공은 여전히 제대로 맞지 않아요. 요즘 아이언은 좀 늘었어요. 그래서 7번 아이언과 드라이버의 비거리가 거의 비슷해요. 슬라이스는 드라이버가 훨씬 심하고요. 집에 와 반성하면 뭔가 알 거 같아 기쁜 마음으로 연습장에 가는데, 돌아올 때는 늘 고개 푹 숙여요.  


오, 너무 걱정 말아요. 겁먹지 말아요. 앞으로 1년 동안 미상 씨를 힘들게 하지 않을 테니까요. 김사장이 준 드라이버도 있고, 아내 몰래 연습용으로 하나 더 샀거든요. 미상 씨랑 같이 온 녀석 봤죠? 앞으로 그걸로 열심히 연습할 거예요. 그리고, 저 미상 씨 없는 동안 많이 반성했어요. 혼자 바닥에서 시작한 내가 얼마나 잘하겠다고, 그리도 무섭게 돌리기만 했는지요.


사실, 저 자신 있었어요. 미상 씨와 함께라면 250미터는 쭉쭉 날릴 거라고 생각했죠. 제가 운동 좀 하거든요. 어렸을 때 자치기도 잘했고, 순발력도 좋거든요. 그래서 제 목표를 장타로 생각했던 거예요. 그런데, 저에게 그런 놀라운 비거리는 애초에 없었더라고요. 다른 사람들 치는 거 보고 꿈만 꾼 거예요. 마치, 내 것도 아닌데, 그게 내 실력인 것처럼 말이에요. 웃기죠?


이제는 무식하게 세게 치지 않아요. 미상 씨를 아프게 하면서 잘못된 힘은 화를 부른다는 걸 알았거든요. 너무 의기소침한 거 같다고요? 그것도 걱정 말아요. 코로나19 때문에 당장 김사장, 김차장과 필드에 나갈 것도 아닌데요 뭐. 천천히, 즐겁게, 매일 틀리며, 매일 발전할 게요. 그나저나, 치료비가 공짜래요. 그래서 미상 씨를 무상 씨로 바꿀까 하는데, 좀 그런 가요? _ 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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