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마주 볼 것

<벌새>(House of Hummingbird, 2018) ④

by 안효원

뛰쳐나가고 싶을 때가 있다. 하던 일 다 손 놓고 훌쩍 떠나고 싶다. 누군가 포기라고 조롱해도 좋다. 어차피 이미 너는 내 마음을 헤아리지 않았으니. 은희는 가끔 자살을 생각한다. ‘오빠 새끼가 괴롭혀서 힘들다는 유서를 남기고 (…) 그 새끼 막 울고 아빠한테 혼나. (…) 그러면 막 상상만 해도 후련해.’ 해동검도 배웠다고 죽도로 때리는 오빠에 대한 소심한(?) 복수다.


긴장과 폭력, 집을 뛰쳐나가도 이상할 게 없지만, 은희는 집을 나가지 않는다. 밤에 잘 싸돌아다니는 언니 수희도 결국 집으로 돌아온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집의 원심력, 지금은 잘 기억나지도 않는 몸의 기억 때문 아닐까. 소리만 지르는 아버지도 언젠가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자신을 ‘야’로만 부르는 오빠도 한때는 옷장에 함께 숨어 숨바꼭질을 즐겼을지 모른다.


성수대교가 무너진 다음 식사 자리, 친구를 잃은 슬픔에 빠진 수희를 옆에 두고 대훈은 대성통곡을 한다. 날라리라고, 가족의 수치라고 여겼지만, 그녀가 사고를 당했을 수 있다는 생각은 그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지금은 그렇지 않더라도, 오랜 시간 함께한 사람을 몸과 마음은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다. 지금, 내가 잊은 오래된 기억이 불안한 오늘을 지탱하는 원동력이다.


온 가족이 밥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아버지의 일장연설이 펼쳐지고, 때로는 싸움터로 변하지만, 그들은 그 자리를 지킨다. 서로를 향한 적대적인 감정을 견디는 시간, 그것이 기도가 아닐까 싶다. 마음 같아서는 뒤집어엎고 싶지만, ‘내 생각’을 누르고 ‘다른 존재’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어쩌면 지금이 최악은 아닐 수 있기에, 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일단은 마주 볼 것.


영화 <벌새>와 내년 1월 출간할 아내의 <엄마의 책장> 원고를 보며, 부끄러웠다. 은희와 아내를 힘들게 하는 이들의 모습이 나였다. 결혼 초, 나는 아내를 이해하지 못했다. 육아에 힘들어하는 아내를 보며 ‘지나치게 힘들어함’이라고, 판단했다. 속상한 마음 앞에서 일장연설을 하며, 상처를 주었다. 나의 그릇된 자기 확신의 시간을 눈물로 견뎌준 아내, 미안하고, 고맙다.


* 제목 ‘일단은 마주 볼 것’은 책 <미움받을 용기>(135쪽)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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