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순간, 죽음을 본다

<아이리시맨>(The Irishman, 2019) ①

by 안효원
<아이리시맨>

보통 가까운 게 좋다. 시장도, 도서관도, 사람 사이의 거리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게 있다. 죽음. 보통 우리는 살면서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매일 타인의 죽음을 보면서도, 나의 일이라 여기지 않는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기적을 많이 경험했으면서도, 스승의 죽음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들의 믿음 없음을 탓하고 싶지 않다. 다만 죽음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을 뿐.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아이리시맨>에서 죽음을 산 사람의 얼굴에 떡하니 새겨 넣는다. 옷 멋지게 입고, 맛있는 거 먹으며, 웃는 사람들이 머지않아 겪게 될 비참한 죽음. 어느 뒷골목에서 총 몇 방 맞고 죽은 채로 발견. 그토록 많은 걸 갖고 싶어 살인도 서슴지 않은 이들, 하지만 그들이 생애 마지막 순간 경험하는 것은 아무도 없는 공간, 살기 가득한 적의 눈빛뿐이다.


우리 나이로 77세인 감독은 흥행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 작품만 해도 러닝타임이 3시간 29분이다. 그의 영화 대부분이 러닝타임이 긴데, 자신의 삶을 걸고 만드는 작품, 흥행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말이다. 인생. 그동안 스콜세지 감독은 인간의 고독과 세상의 비정함을 많이 그렸다. 이번에는 거기에 죽음이라는 화두를 더해, 시간 앞에 유한한 인간 존재를 살핀다.


작품은 길지만 지루하지 않다. 매력적인 주인공 프랭크(로버트 드 니로)의 삶이 워낙 죽음과 가까이 있어 긴장을 놓을 틈이 없다. 대표적인 장면이 호파(알 파치노)와 프랭크의 딸 페기(안나 파킨)가 춤추는 장면이다. <여인의 향기>의 명장면을 떠올릴 정도로 아름다운 순간, 호파 바로 뒤에는 격렬하게 대치하고 있는 마피아 보스들이 죽일 듯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 바로 붙어 있는 가장 비극적인 순간, 우리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타인을 쉽게 판단(정죄)하는 시대, 자기 생각에 충만해, 타인을 죽일 만큼 증오하는 사회. 선한 얼굴, 좋은 말을 하다가도 자기 뜻과 다르면 순식간에 돌변하는 사람들, 무덤에 있는 듯 답답하다. 기꺼이 납작 엎드려주겠으나, 너무 누르지는 마시오. 나도 인간이오. 들이받을 수 있으니.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일단은 마주 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