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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효원 Aug 04. 2021

사색을 가장한 게으름

<안경>(오기가미 나오코, 2007)

코로나 직전에 베트남 여행을 떠난 건 엄청난 행운이다. 나의 삶을 돌아보면, 이 여행은 뜻밖의 것이었다. 아내와 아이 둘을 두고, 4박 5일을 떠난다는 건 나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데, 지칠 대로 지쳤고, 어딘가 떠나고 싶어, 나는 김차장 핑계를 대고, 김사장은 내 핑계를 대고, 무작정 바다를 건넜다. 뭔가를 해서가 아니라, 암것도 안 해서 더 좋은 여행이었다.    

  

베트남 여행 동안 덜 성실하고, 덜 이타적인 삶을 살면 어떨까 생각했다. 농촌에서 나고 자라, 성실이 몸에 배겨, 일도 봉사도 열심히 했다. 하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내 노력은 타인에게 사소한 것으로 닿았고, 늘 시선을 밖으로 돌리니, 가져도 허전했다. 버트란트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읽었다.(문근영 다운 리뷰!) 나도 하루 4시간 일하고, 게으름을 부리고 싶다.      


베트남 여행, 러셀의 책, 그리고 영화 <안경>을 보고, 나는 게으르게 살기로 느슨하게 마음먹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가진 게 많다는 것을, 너무 애쓰지 않아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을 느꼈다. 들에서 쉰내 나게 일하는 게, 오늘 하루 게으름 티켓을 얻는 거라 느껴져 신났다. 성실하고, 덜 친절한 것이 나의 일상을 더욱 여유롭고 풍성하게 만드는 새로운 안경이다.     


<안경>은 나의 미래다. 살아온 습관에 아무 일 안 하면 아직도 어색하지만, ‘사색을 가장한 게으름’을 피우다 보면, 언젠가 편안한 날이 오지 않을까? 과하게 친절하고, 과하게 노동하고, 과하게 의미 부여하던 돌핀 팔레스와 같았던 나의 과거는, 타에코가 길 위에 버리고 온 짐처럼, 바이 바이! 덜 성실하고, 덜 친절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대한 공허한 미움은 없을 터.     


작품에 나온 사람들은 아마도, 그곳 사람들이 아닐 것이다. 온통 푸르고, 탁 트인 바다가 있는데, 안경 쓸 일이 있을까? 어딘가에서 죽어라 일하다 상처 받고 온 영혼들 아닐까? 그들은 타인의 아픔을 알기에, 강권하지 않는다.  ‘왜?’라는 질문도 않는다. 인생은 각자의 몫. 조금 안다고, 남의 전부를 판단할 수 없다. 봄에만 모이는 이유가, 나머지 계절에 애쓰고 오는 건지도 모른다.      


지금 나와 딱 맞는 영화를 만나니 할 말이 넘친다. 이 또한 옛 모습이기에 딱 한 마디만 더.

과거를 붙잡는 것도, 미래를 알려고 하는 것도, 현재를 사는데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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