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효원 Sep 05. 2021

어둠마저 밝게 하는 판타지

<지금 만나러 갑니다>(이장훈, 2018)

울지 않겠다 다짐했다. 2005년 일본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보며 애인 몰래 엉엉 울었다. 아 그래, 나에게도 손예진 같은 여자 친구가 있었지. 애석하게도 나는 소지섭과 같은 남친은 되지 못했다. 그런 얼굴에 기럭지, 성격까지 좋아버리면 나 같은 놈들은 어떻게 살라고. 어쨌든, ‘눈물이 흔하면 나이가 든 거’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내용도 아는 거, 안 울어야지 했다.     


나이가 든 게 맞나 보다. 행여 눈치 없이 눈물 날까, 손예진의 얼굴에만 집중해 보고 있었는데, 그녀가 두 번째로 지호를 떠날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쳤다. 바로 등장하는 소지섭의 얼굴에 눈물은 싹 말랐지만, 그 마음은 요즘 드는 내 생각과 합쳐져 마음을 저리게 했다. ‘네가 있는 하루가 너 없는 100년보다 소중해.’란 말에 소름이 쫙 끼치지만, 고개는 끄덕끄덕.     


나의 청춘을 돌아보면, 우진보다 홍구(고창석)에 더 가깝다. 인심 좋고, 시간이 지날수록 제 나이를 찾아가는 비주얼. 성실하고 지혜롭다고 자부했는데, 돌아보면 실수투성이다. 그동안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죠’라 생각하다, 요즘엔 아이를 보며 어둠마저 밝게 하는 판타지를 경험한다. 나의 모든 순간이 있었기에, 지금 이 눈빛을 만날 수 있었겠지. 만약….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판타지다. 이 세상 이야기가 아니란 말이다. 아마 소지섭과 손예진도 결혼을 하고 연기를 했다면, 양심상 도저히 그렇게 못했을 터. 하지만, 한때 나도 그랬고, 지금 나의 삶을 긍정하게 만드는 존재가 아이라고 생각하면, 그리 심한 뻥은 아니란 생각도 든다. 오히려, 일상에 지치고 치여 잊고 지내던 기억을 되살리는 살랑살랑 따뜻한 바람 되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잠든 시간, 영화를 보고 다짐했다. 날 최고라 하지는 않지만, 누구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저들을 위해 나도 나뭇단을 쌓아 올리겠다. 새벽에 고추를 따고 돌아오니, 아이들은 싸우고 있다. 아내는 연애시절 사진을 보며, 그때보다 지금이 더 예뻐졌다고 한다. 나의 다짐이 24시간이 되기도 전에 구름 나라로 사라질 판이다. 지금 만나러, 아니, 놓지마 정신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