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한준희, 2021)
나는 군대 얘기를 별로 하지 않는다. 수월한 군 생활을 했기에, 미안한 마음에, 쑥 빠진다. 그래서 <DP>(Deserter Pursuit)를 보면서, ‘친구들이 저렇게 고생했단 말이야?’,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그래도 재밌게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세 사람(이병, 상병, 그리고 중사)의 호흡이 잘 맞아서다. 거칠어 보이는 인물들이지만, 속살은, 어느 별에서 왔는지, 따뜻하고, 합이 잘 맞는다.
에피소드 별 구성도 한몫한다. 회차 별로 연결고리가 크게 없어, 아무리 심각한 상황이라도 끝나면 그만이다. 일종의 판타지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괜찮을 거라는 믿음. 상관의 얼굴을 피떡으로 만들어 놨는데, 다음 회에 다시 탈영병을 쫓는 게 현실에서 가능할까? 현실성을 문제 삼는 게 아니라, 덕분에 덜 부담스럽게 볼 수 있었단 말이다. 이 현실도 그러면 좋으련만.
6회까지 다 보고 나서, 다시, 더없이 마음이 무거워졌다. 가혹한 폭력을 당하다 탈영을 감행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감히 해줄 수 없는 이들이 겪는 안타까운 현실 때문이 아니다. 마지막 에피소드의 제목이자, 세상 좋은 미술 선생님이었다가, 칼을 들고 자신을 괴롭혔던 선임을 찾아가는 ‘봉디’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 ‘방관자들’, 이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다.
춥고, 어두운 막다른 길에 봉착한 그는, ‘당장 멈춰야 해. 지금이 돌이키기 가장 좋은 때야’라는 말을 듣는다. 그 말을 하는 이들의 마음도,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나빠질 거라는 말도 다 이해가 된다. 하지만 봉디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할 수 없다. 만약 그런 판타지가 가능하다면, 지금 이런 비극이 펼쳐지지 말았어야지. 그리고 절규한다. “다 방관자들이야.”
이 말이 가슴을 찌른다. 나 또한 살면서 방관자의 자리에 서지 않았는가. 그런데 보통의 얼굴을 하고, 하루하루 힘겹게 사는 이들에게 그 말을 좀 가혹하지 않은가? 부조리한 현실에 겨우 적응해가며 살고 있는데, 그 현실을 바꾸지 못했다고, 남들에게 더 따뜻하지 못했다고, 방관자 소리를 듣는 건, 적잖이 억울한 일이다. 봉디의 말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그래서 더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