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아론 소킨, 2020)
검찰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크다. 권력과 결탁한 (소수) 검사의 행태가 코미디에 가깝고, 개혁을 바라는 이들의 절실함을 모르는 바 아니나, 그게 가능할까 싶다. 이렇게 비관적인 전망을 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 ‘법’ 말고 공동체를 유지하는 규범이 사라졌기 때문.(공동체는 남았나?) 자정능력을 상실하고 ‘법대로 해!’를 외치면서, 검찰의 칼이 깨끗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1969년, 미국 시카고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재판이 열린다. 5개월 전, 민주당 전당대회를 둘러싸고 벌어진 반전시위에서 야기된 폭력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아니, 꼴 보기 싫은 여덟 놈, 아니 중간에 하나 빠져 7놈을 혼내주기 위해서다. 출신 성장 배경도, 정치적 견해도, 헤어스타일과 유머 코드도 다른 7명이 한 목소리를 낸 것은 바로, 파병 반대, 베트남 전쟁 중단, 평화!
작품에서 마지막 장면만큼 감동적이었던 것은, 누군가에게는 위험해 보이기 짝이 없는 이 일곱 명이 폭력 사태를 막기 위해 애쓰는 모습들이다. 그들은 무장한 경찰, 주방위군 앞에서 행여나 유혈 충돌이 일어날까 봐 방향을 돌리고, 끝없이 외친다. 하지만 중무장한 상대 앞에서 돌발 상황이 펼쳐지고, 결국 피를 보게 되었다. 피, 누군가에게는 가장 탐스러운 먹잇감이다.
이때부터 똑똑한, 아니 그저 법률 지식이 많고 비열한 이들의 기술이 들어간다. 유리한 것은 확대하고, 불리한 것은 축소하면서, 7인을, 그리고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범죄자, 잠재적 국가 전복 세력으로 규정한다. 재판 과정을 보면 짜고 치는 고스톱이요, 우아함을 가장한 졸렬함임을 알 수 있지만, 절반의 정의감, 절반의 권력 의식을 가진 이들은 물러설 줄 모른다.
결국 보통 사람들의 상식이 통하기 위해서는, 권력자들의 작전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애초에 판을 깔아주면 안 된다. 평화시위만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절박한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힘들고 손해를 보더라도, 공동체 구성원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일을 줄여주는, 나로부터의 개혁이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