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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효원 Nov 23. 2021

눈물짓는 농부

<크라이 마초>(클린트 이스트우드, 2021)


나도 잘하는 거 하나 있어야지, 란 생각이 마흔 너머 들었다. 욕심은 없는 탓에, 농부로서 장비를 잘 다루고 싶었다. 어느덧 익숙해지자, 위기가 찾아왔다. 트랙터를 논에 빠뜨릴 뻔하고, 160만 원짜리 장비를 아스팔트에 처박았다. 한심하다. 그런데 억울하기 짝이 없다. 일하고 욕먹고, 일해주고 고생하는 무한 반복. 마이크(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날 보면 뭐라고 말할까.      


마이크는 한때 잘 나가던 로데오 스타이자, 탁월한 말 조련사. 하지만 이제는 가진 거라고는 늙은 몸밖에 없다. 의리(?)는 있는지, 자기를 해고한 사장의 부탁으로 그의 아들을 찾아 멕시코 국경을 넘는다. 그가 만난 소년은 집보다 거리가 편한, 친구라고는 싸움닭 마초가 유일한 라포이다. 둘은 함께 여행을 떠나며 가까워지고, 마이크는 주름만큼 깊은 이야기를 건넨다.      


“강하다는 것(마초)은 과대평가된 거야. 그냥 (투지가) 있어 보이려고 그러는 거지.”  

   

사실 나도 알고 있다. 트랙터 운전을 잘한다고 좋은 농부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런데 왜 나는 그러고 싶었을까. 어차피 논에서 혼자 하는 일,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괜히 조급했다. 사실 이유도 안다. 내가 나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때 마이크가 말을 걸었다. ‘한때는 정답을 찾았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나이 들고 보니까 아니야. 결국은 선택의 문제야, 네가 해야 할.’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나는 섬세한 사람, 주변 상황이나, 타인의 감정 파악을 귀신같이 한다. 그런 내가 거칠고 강해지는 것은 어려운 일. 그런데 나는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섬세하면서도 강할 수 있을 거야, 나니까! 하지만 이제 마흔셋 생일을 열흘 앞두고 선택하련다. 나는 섬세한 사람, 빠르고 강한 건 내 인생에서 찾지 않으리라. 마이크가 말했다.     


“네가 가는 곳을 봐. 그리고 네가 보는 곳으로 가.”

(Look where you're going, and go where you're looking.)     


이건 우리 2호와 캐치볼 할 때 많이 쓰는 말 아닌가? “아빠 가슴팍 보고 던져!” 이걸 알고 말하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내가 가지 못할 곳을 바라보고 살았다. 그러니 삶이 고달플 수밖에. 며칠 전 고딩 동창들과 술 먹고 (다음 날) 돌아오는데, 노래 전주에 나오는 현악 연주에 눈물이 쏟아졌다. 너무 애쓰지 말라고 위로했다. 강하지 않더라도, 눈물짓는 농부도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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