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드니 빌뇌브, 2021)
나는, 누구나 그렇지만, 싸움을 싫어한다.(모두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집에서 형이랑 싸우지 마라, 교회에서 이웃을 사랑해라, 학교에서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라고 배운 탓에, 그렇게 살았다. 타인과 잘 지내는 건 나의 장점, 빛과 그림자, 동전의 양면처럼, 싸움은 나의 약점이다. 심장이 터질 듯 괴롭다. 갈등 상황에서 물러나는 게 좋을 줄만 알았는데, 큰 위협이 되었다.
아주 먼 미래, 폴(디모시 샬라메)은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후계자이다. 어느 날 황제로부터 아라키스 행성을 다스리러 가라는 명을 받고, 귀족 가문은 황량한 사막 행성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귀한 물질 스파이스가 있고, 오랫동안 살아온 민족 프레멘이 있다. 또, 황제와 라이벌인 하코넨 가문의 계략이 있다. 덫인 줄 알고 갔지만, 사막(듄)은, 인간의 탐욕은 더 위험하다.
폴은 부드럽다.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싫어한다고, 그럴 기분이 아니라고, 갈등을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전쟁 같은 세상에서, 한 번도 사람을 죽여본 적 없는 사내, 그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사실, 그만 싸움을 하지 않았지, 그를 둘러싼 모든 사람이 이미 전쟁 중이었다. 프레멘도 그렇고, 부하들도 그렇고, 아버지도 그렇다.
더 이상 물러설 길이 없을 때, 폴은 싸움을 선택한다. 전쟁 중 갈등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평화가 아니라 회피이다. 그렇게 아이는 고난을 통해 어른이 되어간다.(그가 프레멘의 메시아가 되어 전 우주적 종교전쟁을 펼치는 이야기는 차기작에서 펼쳐진다고 한다. 부디 사람 위에 사람 있는, 서구 기독교적 세계관이 재탕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아니라 하기도 하고.)
나는 운 좋게 싸움하지 않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한계에 부딪혔다. 나 대신 누군가가 그 일을 대신해주었을 뿐. 그동안 아들에게 싸우지 말라는 말을 수없이 하고 살았는데, 그게 아이 삶에 도움이 될까 싶다. 남을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싸우는 게 맞다. 눈앞의 싸움을 피하려다 돌이킬 수 없는 전장에 빠지는 경험을 하고, 듄으로 걸어 들어간다.
I must not fear. Fear is the mind-killer. Fear is the little death that brings obliteration. I will face my fear and I will permit it to pass over me and through me. And when it has gone past. I will turn the inner eye to see its path. Where the fear has gone there will be nothing. Only I will remain. (Lady Jessica Atreides)
두려워하지 말자. 두려움은 영혼을 살해한다. 두려움은 나의 존재를 무(無)로 만드는 작은 죽음이다. 나는 두려움이 맞설 것이며, 그것이 내 몸을 관통해 지나가는 것을 허락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다 지나가고 나면, 내 속에 그것이 지나간 자리를 응시할 것이다. 죽음이 지나간 자리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오직 나만 남을 뿐. (레이디 제시카 아트레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