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바다>(최항용, 2021)
가물면 일이 두세 배 늘어난다. 아니 몇 배로 늘어날지 모르고, 수확을 포기하기도 한다. 농사를 지으며, 가뭄으로 고생하기를 몇 번. <고요의 바다>의 배경은 바닷물마저 말라버린 먼 미래. 그 고통은 짐작하지만, 짐작할 수 없다. 어떻게든 살아야 하니까, 비행기 타고 가듯, 달로 향한다. 더 이상 그곳에 토끼는 살지 않는다. 자원이 있고, 죽음이 있고, 알 수 없는 게 있다.
먼 미래라고 하지만, 사람 사는 모양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에 등급을 매겨 물을 공급하는 건, 돈으로 사람을 판단해 기회를 제공하는 지금과 마찬가지.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는 늘 비슷한 양상을 반복해왔다. 자원으로, 돈으로, 그게 안 되면 사람은 태생부터 다르다는 대가리 속 신념으로 끝없이 차별했다. 이제 모두 비슷해지나 했더니, 등급은 여기저기서 인기다.
등급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VIP 카드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들이 보통 사람보다 나쁜 사람이라 생각지는 않는다. 그런데,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그들이 저질러 놓은 일들을 보면, 좋은 사람도 아니다. 다수를 위해 소수를 탄압하고, 그것을 미래를 위한 희생이라고 포장하는 것은 같은 종끼리 할 일이 아니지. 사회의 발전은 어디까지나, 사람을 죽이지 않은 선에서.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살면, 종말을 필연적이다. 원하는 건 하난데, 그걸 바라는 이들이 많으면 남아날 리 없다. 어느덧 ‘지속 가능한 성장’을 얘기할 단계를 넘어, 절벽 앞에 선 심정으로, ‘모두 줄임, 절대적 줄임’을 논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그걸 생각하고 말하면서도 자유롭지 못한 건, 나 또한 넘침의 세상에 너무 깊이 몸을 담그고 있다는 것.
자연스레 종말을 생각하게 된다. 환경 악화, 양극화 심화, 코로나19 같은 예상치 못한 위협 등 가시밭길이다. 반면 모두가 갈가리 찢긴 현실에서 공동체를 회복해 새로운 길을 찾기는 요원하다. 자연스레 새로운 종이 출현할까? 작품을 보면서 그나마 꿈꾸는 건 막연한 희망뿐인데, 문득, 50년도 못 살 거면서 하는 생각 치고 너무 거대하다 싶다. 다시 고요의 바다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