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의 작품을 보고 극장을 나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적이 있다. <아라한 장풍 대작전> <짝패> <베를린>의 기억이 하도 강렬하여, <모가디슈>로 그걸 거라 생각했다. 안기부 출신의 태권도 품새가 그럴듯한 강대진(조인성)의 모습을 보고 기대감 업! 그는 트레이닝 받은 요원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곳은 내전이 벌어진 아프리카. 미쳐 내가 알지 못하던 게 있었다.
영화기자를 하면서 액션 영화를 보는 나름의 기준이 생겼다. 주인공과 상대의 힘이 팽팽히 맞서고, 상대가 나름이 이야기를 갖춰야 긴장감과 쾌감이 폭발한다. 먼저 힘의 균형이 맞아야 하는데, 이 작품은 그게 안 맞는다. 강대진과 북측 요원 태준기(구교환)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들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다. 총을 든 소말리아인들이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
긴장감 넘치는 씬 구성은 탁월하다. 그런데 그 목표가 싸움이 아니라 탈출(Escape)이며, 이야기 초점은 외부와의 갈등이 아니라 내부와의 화해이다. 중반 즈음에서 액션 영화라는 생각을 지우고, 드라마로써 인물들의 관계에 집중했다. 그러니까 그때, 그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고단함, 이념이 빚어낸 개인의 고뇌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니까, 살아야 하니까, 뭐라도 해야지.
이 작품을 보면서 기분이 좋았던 것은, 딱딱했던 인물들이 시련을 겪으면서 점점 말랑해지기 때문이다. 그래, 사람이란 존재가 애초에 글러먹은 건 아니지, 저렇게 따뜻할 수 있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지만 말이야. 한 번 말랑해졌으니, 다시 따뜻해질 수도 있을 거야, 현실도 영화처럼. 우리도 그들처럼. 류 감독의 말처럼, “버티면 좋은 날 옵니다.”
<고요의 바다>를 보면서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졌는데, <모가디슈>를 보면서 조금은 가벼워졌다. 한파경보가 내려진 2021년의 마지막 날, 이 글을 쓰면서 마음이 살며시 따뜻해졌다. 대선을 앞둔 한국은 내전 상황이다. 말의 총알이 난무하고, 사람들이 상처받고 있다. 하지만 진짜 적은 우리 안에 있지 않다. 나도 나이가 드는가, 한신성(김윤석)의 말이 진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