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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효원 Jan 04. 2022

추락 혹은 비상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2018)


벌써 20년 전 일이다. 거미인간이 고층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는 모습에 충격과 환희를 느낀 게. 당시 나는 소년과 촌놈에 가까워, 할리우드 최신 기술에 입이 떡 벌어졌다. 그 희열은 <트랜스포머> <아이언맨>로 이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감탄은 탄식으로 변했다. 하지만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다시금 그때의 기분을 맛볼 수 있게 만드는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나쁜 놈이 죽은 가족을 되살리기 위해 다차원 세계의 문을 열려고 한다. 하나의 시간도 감당하기 어려운 게 우리 인간들, 대혼란을 막기 위해 스파이더맨은 고군분투하지만 실패하고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운 좋게도(?) 방금 전 방사능 거미에 물린 마일스가 그의 유언을 듣고, 더 운 좋게도(??) 다른 세상에 있던 다양한 모습의 스파이더맨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유쾌하고도 긴장감 넘치는 상황에서, 이들의 시너지는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폭발한다. 싸움 세계 1등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영웅 대접을 받으면서도 그들은 늘 외로웠다. 자신들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같음’이 아닌 ‘차이’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많이 다른 겉모습을 보기보다, 결국엔 혼자란 외로움과 정작 사랑하는 잃은 아픔을 서로 보듬는다.


강인한 슈트에 가려진 그들의 말랑한 내면을 보면서 그들이 했던 말이 새롭게 다가왔다. ‘당신이 영웅입니다. 우리 모두 스파이더맨입니다.’ 이 말이, 그냥 그런, 아니 너무 흔해서 지겹기까지 한 겸양의 표현인 줄 알았다. ‘너희도 영웅이라고 해줄게!’ 요정도? 하지만 그게 아니라 진심은, ‘나도 당신과 다르지 않으니, 나를 외롭게 내버려 두지 말아 주세요. 제발!’로 들렸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며 늘 분투하는 이들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 마일스는 다른 스파이더맨들에게 기술을 가르쳐달라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가르쳐줄 게 없기 때문. 영웅이 되는 첫걸음은 스스로 첫걸음을 떼는 것. 추락처럼 보일 수 있는 그 첫 발 떼기는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할지도 모른다. 너무 높은 곳에 오르진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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