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드런 액트>(리차드 이어, 2018)
공부방을 하던 몇 년 전 일이다. 한 학생의 아버지가 술이 취해 찾아와 소동이 벌였다. 나의 아버지가 아이를 위해 그 사람에게 한 소리 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아무 말 안 했다. ‘남의 가정 일인데 무슨 말을 하냐.’는 것이었다. 그때는 야속하고, 무책임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버지의 생각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누구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나.
성인 되기 3개월 남은 소년 애덤이 백혈병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수술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인데 그 부모는 수혈을 거부한다. 그들은 여호와의 증인으로, 피가 섞이는 것을 부정한 것으로 믿고 있다. 병원의 요청으로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데, 판사 피오나(엠마 톰슨)는 판결 전 소년을 만나보겠다며 그의 병실을 찾아간다. 소년은 말과 달리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40년을 아무런 의심 없이 그렇게 살았다. 좋은 뜻, 좋은 방향이라면 누군가를 잡아끌어도 된다고 믿었다. 나는 그것을 선의라고 배웠고,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좋을 때는 그게 통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 닥쳤을 때, 나는 누군가의 마음속에 한 걸음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때는 깊은 슬픔과 좌절감을 느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뭐라고….
사람은 저마다 다른 세상에 산다. 다른 문법을 가지고 말하고, 각자의 규칙에 따라 행동한다. 하나의 이상향을 믿었을 때는 그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틀을 벗어나니, 그게 너무 당연한 것으로 느껴진다. 여호와의 증인이 폐쇄적인 것처럼, 법원 사람들 또한 타인의 접근을 불허한다. 소년의 부모가 말이 통하지 않는 것처럼, 피오나 또한 남편과 조차 소통이 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세상을 지배한 신 관념, 지금 강한 힘을 발휘하는 법체계. 이 둘은 귀하고, 위대해 보이지만, 사람이 뒤집어쓰면 그 또한 인간의 영역. 사람이 사는 일에 어디 확실한 것 있나.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 누구도 내 침실에 들어올 수 없다. 나 또한 타인을 내 생각으로 물들일 수 없다. 필요하다면 천천히, 그가 마음 열 때 조용히, 서로 통하는 문법으로….
“My choice. my lady.” _ Adam Hen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