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 마음

한 어머니 이야기

by 안효원

월요일 아침 전화는 반갑지 않다. 주말에 쌓인 일들과 스트레스, 나의 속도로 정리하고 싶은데, 십중팔구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이다. 어머니가 외숙모 모시고 미용실에 다녀오라고 했다. 웬만하면 짜증이 났을 텐데, 외숙모는 나한테 그런 존재가 아니다. 여든이 넘은 외숙모는 매우 지혜롭고, 내가 존경하는 일인이다. 평생 들에서 고된 일을 하면서도 불평하지 않는다.


이날 머리를 하는 건 내일(17일) 둘째 아들 퇴임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40년 동안 군생활을 한 아들의 퇴임을 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떨까. ‘시원섭섭하시겠어요?’라고 물으니, ‘미안해요.’라고 답했다. 서울대도 갈 수 있었는데, 집안 형편 때문에 육사를 가서 평생 고생했다는 이유다. 나의 눈에는 그의 별만 보이지만, 어머니의 눈에는 고생한 기억이 생생한 듯하다.


사촌 형은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단다. 사실 나는 잘 몰랐다. 명절이 되어도 부대를 지킨다고 안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평생 포병 주특기로 야전에서 근무했는데, 한 번은 강원도 고성에 있으면서 유행성출혈열이 걸려 헬기를 타고 서울로 후송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밖에도 사계절 가리지 않고 야전에서 포와 포탄을 만지니, 생각해보면 그 삶이 고되지 않을 수 없다.


그 시절 그 집이 힘들었던 건 순전히 그의 아버지, 즉 외삼촌 탓이다. 내가 만나본 최고 이타적 인간. 내복이 생기면 내복 없는 사람들 줬다. 이장으로서 사람들 사는 형편을 다 알았다. 그의 인생에 사명 하나 있었으니, 교회 개척이다. 없는 살림에 서울에서 전도사 불러다 재우고, 먹였다. 교인들 일 있으면 부리나케 달려갔다. 교회 아이들 업고 한 시간 이상을 걸었다.


삶의 현장은 다르나, 사촌 형도 아버지를 닮았다. 셋째 아들이 탱크 부대에 들어갈 참이었다. 여름엔 계란이 익고, 겨울엔 얼음이 언다는 탱크, 그 육중한 장비와 함께한다는 건, 고생문이 열린다는 것. 외숙모는 안타까운 마음에 겨우 아들에게 전화를 했는데, 돌아온 답은 이렇다. “누군가 있어야 한다면,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동생도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어머니.”


빛나는 외숙모를 모시고 돌아오는 길,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눴다. 일하고 돌아와 누우면 알아서 젖을 찾아 물던 이야기, 고기 한 번, 미역국 한 번 못 해주었단 이야기…. 말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외숙모의 목소리가 촉촉해졌다. 괜히 분위기 바꿔보겠다고 웃으며, ‘누구보다 잘 자란 3남 1녀가 자랑스럽지 않으냐.’고 물었다. 외숙모는 잠깐 창밖을 보고 답했다.


“자랑스럽지. 무척 자랑스럽지. 고맙기도 하고요. 그런데 해준 게 없어서, 늘 미안한 마음이에요. 내 마음이 그래요.”


- 제7포병여단장 이귀우 준장님,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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