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올봄은 조금 서둘러 왔다. 농부에게 봄은 개구리울음소리가 아닌 일과 함께 시작하는 법. 10년 전 지은 비닐하우스의 비닐이 낡고 찢어서 덧대 쓰기를 몇 해, 더 이상 연명할 수 없어 전면 교체를 결정했다. 3월이 되어 바람이 불면 하늘과 절대 이길 수 없는 비닐 줄다리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2월 안에 끝내야 했다. 그래서 두꺼운 패딩을 입고 봄을 맞게 되었다.
비닐하우스 선수 아저씨가 있다. 새벽 5시면 오토바이를 타고 현장에 유유히 나타난다. 내가 맘에 들었는지 그는 나를 데리고 몇 군데 다니며 비닐을 씌웠다. 그때마다 눈에 들어온 건 대장의 공구 벨트. 일하기 전에 착 메고 온갖 공구를 넣으면, 말 그대로 존멋. 추운 봄 새벽에 벌벌 떨며 일했으니 나에게 선물 하나 해야지. 실력에 비해 과분한 공구 벨트가 하나 생겼다.
작년부터 가깝게 지내는 소울(푸드)메이트에게 캠핑 초대를 받았다. 자기가 다 할 테니, 와서 잡수기만 하라는 감동의 초대장. 이틀 동안 술과 고기 잔치를 벌이는데, 베트남 김차장에게 받은 대접 이후로 최고! 봄바람이 든 나는 집 뒤 차고를 정리하고, 테이블을 놓고, 불을 피울 수 있게 만들었다. 밤나무 캠핑장 오픈! 근데 왜 자꾸 뭔가 만들고 싶지? 공구 벨트 ON!
좋아, 나만의 골프 연습장을 만들자! 잠들기 전 머리로 설계도를 그리고, 그물을 주문했다. 장소는 정자로 넘어가는 구름다리 밑. 소나무 그늘 속에서 좀 휘둘러 보자꾸나. 한나절 뚝딱뚝딱 밤나무 골프장이 완성됐다. 만듦새는 뭐 그냥저냥, 하지만 온갖 푸른 시야에 새소리 BGM, 잘못 치고 하늘 보면 커다란 소나무가 ‘괜춘, 괜춘’ 하며 손을 흔든다. 시원한 바람은 서비스!
차로 30분을 나가야 해서 잘 안 갔던 골프 연습장. 집에서 빈스윙만 하며 오답을 연구했는데, 이제는 채점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좋은 건 다른 사람들 치는 거 보면서 괜히 쫄리지 않아도 된다는 거. 나는 느리거나 잘못된 게 아니다. 그냥, 그저, 나의 골프 여정을 걸을 뿐이다. 어느덧 사십 대 중반의 나이, 이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