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품격

[깜언 베트남 2] 나이 마흔, 남자 셋, 여행(시즌 2)

by 안효원

38광땡. 3월에 8월 항공권을 예매하고, 도착 땡 하면 빛의 속도로 공항을 나가는 전략. 코로나19 이후 항공료가 두 배 올라 저가항공을 택했지만, 자리는 비용을 더 지불하고 맨 앞자리를 선택했다. 3박 4일 일정에 라운딩 세 번, 첫날 라운딩을 가는데 단 10분이라도 여유롭게 가고 싶었다. 또 날도 더운데 김차장을 오래 기다리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미 지연된 비행기, 처음부터 어긋났지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김사장이 비싼 연회비를 내고 쓰는 카드에 공항 라운지 이용 혜택이 있는데, 그걸 써먹을 때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3시간의 기다림 끝에 아침 7시부터 신나게 생맥주를 먹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연착된 게 오히려 잘된 거’라며 부어라 마셔라, 주변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흥을 올렸다.


다낭 공항에 도착할 무렵, 우리는 전의를 다졌다. 빨리 나갈 거야. 평생 해본 적 없는 1등을 여기서 해보자고. 김차장을 만나면 격하게 포용을 하리라! 그런데, 비행기가 자꾸 저 멀리 구석진 곳으로 슬금슬금 기어갔다. 낮은 버스가 우리를 향해서 오는 걸 보니, 아, 망했어. 다 저 버스 타고 가는 건가 봐. 다시 힘이 풀렸지만, 다시 힘을 냈다. 그리고 버스를 1등으로 탔다.


2시간 넘는 연착에, 의미 없는 1등,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꼭 좋은 일에만 쓰는 말이 아니구나. 다낭에 도착하는 데만 마음에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러다 문득, ‘나 여기 일하러 온 거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놀러 온 거고, 여행 온 거고, 친구 만나러 온 건데, 서두를 이유 무어 있겠는가. 그래, 천천히 가자. 버스에서는 거의 꼴찌로 내렸다.


여행자의 품격. 다낭 공항에 도착하며 마음에 새긴 말이다. 여행지를 만끽하려면 여유를 갖고 천천히 둘러봐야 하지 않겠나. 우리는 골프라는 김차장의 숙제를 하러 왔지만, 골프는 우리가 만나서 즐거울 하나의 이유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천천히 걸으니 공항이 예쁘게만 보였다. 짐 잘 못 찾아도 괜찮아. 그런데 저 멀리 김차장의 얼굴이 괜찮지 않다. 김사장 뛰어!


[꾸미기]사본 -20220805_121800.jpg 버스에서 거의 마지막에 내렸지만, 입국장을 마지막으로 들어간 건 아니다. 세상에 이런 변수가 있다는 것, 마음만 잘 먹으면 절망의 순간, 절망하지 않을 이유 하나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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