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죽음의 4번 홀, 좀비샷 시연장. 아무 생각 없이 휘둘렀다. 아침에 먹은 쌀국수와 점심에 먹은 라면이 그냥 근육을 움직인 것. 그런데 처음으로 안 죽었다. 순간, 귀를 의심할 정도로 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누가 보면 홀인원 한 줄. 나도 소리를 질렀다. 좋아서 지른 건 아니다. 알지도 못하고 쳤는데, 안 죽었다고 좋을 거 뭐 있나. 그냥 사람 구실은 해야 하니까.
한 캐디가 다가와 레슨을 해줬다. 채 끝을 잡고, 고개 들지 말고, 천천히 쳐요. 7명의 일행은 진심으로 응원했다.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다 죽은 사이보그 눈에 다시 빨간 불이 들어오듯, 나는 좀비에서 사람으로 변신을 꾀했다. 차마 입에서 꺼내기 어려운 말인데, 이번 라운딩의 목표는 100타였는데, 전반 9홀만 돌아도 넘겠다. ‘웃으며 마무리’로 목표를 수정했다.
첫째 미션은 큰 소리로 응원하기. “나이스 샷!”을 누구보다 크게 외쳤다. 처음에 잘 맞은 거 같아 나이스 했다가 잘 안 가면 민망하기는 했지만…. 둘째 미션은 빠르게 걷기. 다른 사람보다 드라이버 거리가 반도 안 되니까 카트 탈 것도 없고, 캐디 올 필요도 없이, 7번 아이언을 들고 폭풍 질주를 했다. 좁은 논둑도 나는 듯이 걷는 내가, 직선으로 가면 카트보다 느릴까.
몇 홀 만에 정신승리를 이룩했다. 골프 라운딩이 꼭 스코어가 잘 나와야 맛인가? 나 같은 초보가 많이 배우고, 붕괴된 멘털을 다시 세우면 그걸로 족한 거지! 그다음부터 티샷이 반은 살면서 제법 칠(?) 만해졌다. 죽으면? “아이 러브 오비 티!”를 외치고 뛰어가면 그만. 남들과 멀리 떨어진 나와 내 캐디, 오래간만에 굿샷이 나오면 소박하게 좋아했던 것도 재미라면 재미다.
경기 중반에 큰 구름이 낮게 깔려왔다. 갑작스러운 폭우와 강풍에 한 번 철수, 그 이후에 우중 라운딩. 뭔가 개운했다. 내가 느낄 수 있는 최악의 감정이 빗물로 씻기는 느낌이랄까? 남들은 이해할 수 없지만 나에겐, 어쩌면 지금 겪는 게 나을지도 모르는 경험? 무엇보다 이날이 좋은 건, 어느덧 비는 그치고 노을이 예쁜 마지막 홀에서 내 인생 최고의 샷이 나왔다는 것이다.
내 인생 최고의 샷은 골프 샷이 아니라 바로 이 사진이다. 김차장 휴대폰 카메라가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아주 멋지게 나왔다. 2년 6개월 전 갔을 때보다 살이 16kg가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