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언 베트남 14] 나이 마흔, 남자 셋, 여행(시즌 2)
날이 덥다. 이게 베트남 여름 날씨구나. 이제 중반인데 챙겨 온 물이 바닥이 보인다. 그때 캐디들이 포도랑 바나나를 주었다. 참 친절하다, 여기서 초록색 바나나를 먹어보네. 그런데 티박스에서 캐디들이 내 주변에 모여들었다.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고, 작게 수군거리며 웃는데, 뭐지? 묘한 분위기에 연예인이 되기라도 한 듯, 기분이 김사장의 드라이버처럼 멀리 날아갔다.
내가 이상한 상상을 하자 정신 차리라는 듯, 캐디가 내 엄지손가락을 가리켰다. 짧고 뭉툭한 손톱을 처음 봐서 신기하다는 것이다. 순간 초록색 바나나 먹는 원숭이가 된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고, 그냥 재밌었다. 스무 살까지만 해도 남들과 다르게 생긴 손이 콤플렉스였는데, 하도 들으니 저절로 극복됐다. 이후 위기의 순간마다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렸고, 캐디들 까르르!
바다가 보이는 파3홀에서 티샷을 했다. 작렬하는 태양과 일렁이는 파도, 그림 같은 샷을 위한 모든 조건이 완성됐다. 그린에 한 번에 올리기만 하면 되는데, 퍽! 저 앞에 굴러감. “한 번 더!” 퍽! 저 앞에 굴러감. “천천히!” 퍽! 저 앞에 굴러감. 아이언 티샷 모두 실패. 캐디와 공을 찾는데,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다. 그걸 보고 웃고 있는 캐디에게 말했다. “일관성 좋죠?”
어느덧 전반전이 끝나고 파4 10홀. 9홀에서 가장 많이 쳐도 가장 빨리 끝내고 왔기에, 먼저 드라이버를 치고 카트에 앉아 쉬었다. ‘힘들다, 골프. 그냥 재미로 할 건 아니네. 근데 그늘, 바람 참 좋다.’ 목 탈 때 물이 가장 시원하고, 지칠 때 바람이 가장 시원한 법. 지금처럼 안 맞다가 잘 맞는 그 순간이 오면, 정말 기쁘겠지. 그때 생각하면, 지금 수고는 기쁨 마일리지.
둘째 샷이 좋아 작은 나무숲을 잘 넘었다. 셋째 샷도 잘 맞아 그린을 약 70미터 남겨놨다. 멀리서 카트를 끌고 오던 캐디가 갑자기 달리기를 시작한다. 56도 웨지를 주려는 것이다. 나는 엄지 척 한 번 하고 오지 말라고 했다. 이 정도는 Lucky 7번 아이언으로 충분히 할 수 있지. 공은 그림같이 날아 연못을 지나 핀 바로 옆에 떨어졌다. 보기 후 바람이 그렇게 시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