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비가 온다. 한국에서 이 정도 비 오면, 뱃속에 나비 한 마리 날아다닌다. 논에 벼들은 쓰러지지 않을까? 뒷산에서 물이 덮치진 않겠지? 하지만 이곳은 남의 땅, 여행자의 마음은 평안하기만 하다. 김차장은 아침 먹으라고 지폐에 카드까지 주고 갔다. 아침을 먹는데 김사장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 “지금 출장 차 베트남에 와서요.” 웃기는 소리에 소리 없이 웃었다.
김사장과 달리 난 전화 한 통 오지 않는다. 느긋하게 맥주를 넘기며 보는, 직원의 느긋한 발걸음이 좋다. 콩카페로 커피 마시러 가는데, 비가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물놀이하는 아이. 직원들 보니까 ‘나도 저 티셔츠 입고 올 걸.’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 주문을 마치니 나오는 노래, ‘My Way’. ‘그래, 이제 나만의 길을 걸을 거야.’ 진부한 다짐을 했다.
길 건너 보이는 강 물살이 예사롭지 않다. 빗소리에 잠겨 이런저런 생각 하다, 필드 위에서 공보다 사람에 신경 쓰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캐디 입장에서 골프 잘 치는 사람이 좋을까, 아니면 성격 좋은데 못 치는 사람이 좋을까? 내가 ‘쏘리’ ‘깜언’을 하도 많이 해서 생긴 궁금증. 문득, ‘즐거운 라운딩이었지만, 더 집중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무. 책. 임. 하. 다.’란 말이, 거센 빗줄기가 머리를 때리는 것처럼, 나를 강타했다. 초보이고,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 내가 집중하지 못한 것에 대한 좋은 이유는 될 수 없다. 평소 ‘좋은 게 좋은 거’란 생각을 갖고 사는 내가 골프를 칠 때도 그런 것일 뿐이다. 친구들은 다 어른이 된 것 같은데, 나는 아직도 ‘좋아요.’ 소리나 듣고 싶은 아이에 머물러 있는 기분이다.
마침내, 어른이 되고 싶다. 내가 꿈꾸는 ‘순수함’이 ‘미성숙’란 걸 알았다. 모두가 ‘좋아요.’ 하는 이에게 ‘마이 웨이’는 없다. 할 수 있는 일을 해온 내가,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 그게 외줄타기처럼 위태로워 보일지라도…. 친구 둘, 형님과 마지막 점심을 먹으며 다짐했다. ‘다음에 와서는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설렐 수도 있구나, 내 인생이!
어려서 애어른 소리를 들었는데, 정작 커서는 어른답지 못하다. 다낭 필드에서 어렴풋하던 나의 민낯이 선명하게 보였다. 남은 인생은 회전목마가 아니라 외줄타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