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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효원 Apr 03. 2024

라면

[안기자 골프 7] 골프의 길(도)을 찾아서

보기, 보기, 더블 보기, 파, 보기. 후반 다섯 홀 기록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보잘것없는 수치일지 모르나, 내가 골프를 치면서 경험한 가장 안정적인 순간이다. 안기자는 지금 잘 치는 것보다 망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 이 기세로 가면 두 자릿수 타수에 진입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김사장과의 시합과 동시에 나와의 시합에 돌입하게 되었다. 그런데….


파 5, 15홀. 헤드 어디에 맞았기에, 공이 물수제비처럼 바닥에 붙어 갈까. 다행히 생각보다 멀리 갔지만, “갈 길이 멉니다.” 캐디의 말에 다시 유틸리티를 들었다. 거짓말같이 어제처럼 60미터 샷이 나왔고, 두 번째는 아예 러프를 지나 산비탈에 처박혔다. 나뭇잎을 밟으며 경사를 내려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림처럼 나오는 상상을 했는데, 그것은 현실이 되지는 못했다.


몇 번을 쳤는데, 아직 그린 주변도 가지 못했다. 파 5라 타수를 줄일 기회도 되지만, 잘 못 치면 그만큼 늘릴 위험도 크다. 나는 지금 후자, 그러니까 타수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이번 홀을 김사장에게 깔끔하게 지자고 생각했지만, 나와의 시합을 생각하니, 눈밭을 걷는 것처럼 발길이 무거웠다. 무슨 영화 대사도 아니고, 묻고 더블을 쳐 이번 홀에서만 10타를 쳤다.


다음 파 3홀에서 양파를 까면서 상황은 더 안 좋아졌다. 다행히 17홀에서 보기를 하며 한숨 돌렸지만, 김사장은 안기자를 바짝 추격했고, 나의 깨백은 다음으로 미뤄야만 했다. 잊지 말자, 호연지기(浩然之氣). 이제 남은 한 홀 아름답게 끝내자!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수다도 떨지 않고, 티샷에 나섰는데, 레이디티로 보냈다. 그리고 다시 산비탈로 보냈다. 이런 식빵!


시합이니까, 정정당당하게 치겠다고, 나뭇잎에 반쯤 덮인 공을 치는데, 원, 투, 쓰리, 세 번 만에 나왔다. 나의 분노지수는 머리끝까지 찼고, 나도 모르게 클럽을 내리쳤다. 만약, 티샷만 좋았더라면, 세컨드 샷만 괜찮았더라면, 한 번에 나가기만 했더라면, 이후에도 머릿속에서 라면이 오래 끓었다. 어차피 지나간 일, 불은 라면은 돌이킬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건, 오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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