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자 골프 9] 11번째 라운드
논도 다 갈고, 못자리도 끝났다. “모내기 전에 한 번 쳐야지?!” 좋은 친구들 덕분에, 4월 23일, 농부는 기쁘게 골프백을 둘러멨다. 이날 새 멤버는, 고교 졸업 후 두 번째 만나는 권프로. 학창 시절 나보다 작고 순둥순둥했는데, 이게 웬 걸. 키는 엄청 컸고, 드라이버 비거리는 아주 매운맛. 벙커에서 못 나와도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순한 성정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첫 티샷에 산의 옆구리를 찔렀다. “앗!” 비명은 내 입에서 나왔는데, 관대한 산님은 공을 길옆에 토해주셨다. 이후 순조롭게 진행되어 1, 2, 3홀 모두 보기로 끝냈다. 낯설다. 더블 보기만 해도 성취감을 느끼는 안기자인데, 급기야 4홀에서 파를 기록했다. 내 스코어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로 붕붕 뜰 찰나, 트리플, 더블 보기를 하며 우울한 안도감에 평정심(?)을 되찾았다.
‘이게 나지.’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어진 7번 홀, 투 온에 원 퍼트로 버디를 기록했다. 워낙 뒤에 있다가 순식간에 들어가 버려 모두 놀랐다. “와!” 친구들은 안기자의 코리아 첫 버디에 환호성을 질렀다. ‘좋아, 이대로 가는 거야!’ 나는 다시 공중으로 떴다가, 다음 홀에서 양파, 쿼드러플 보기를 해 다시 추락했다. 전반 50타, 후반에 한 타만 줄이면 깨백을 할 수 있다!
비가 내렸다. ‘집에 갈까? 계속 갈까?’의 기로에서 우리는 라운드를 강행했다. 비가 잦아들면서 앞 팀이 안 보이는 황제 골프를 경험하게 되었다. 밤안개가 피어오르는 고즈넉한 풍경에 서로를 응원하는 네 친구. 후반 첫 홀의 주인공은 나였다. 왜? 버디를 또 했으니까! “집에 갔으면 큰 일 날 뻔했어. 안기자, 버디 버디라니!” 일상에서 만나기 힘든 짜릿한 감정(기억)이다.
이제 두 홀 남겨놓고 88타. 파, 파, 아니 보기, 보기만 해도 생애 첫 깨백 달성에 긴장감 급상승, 하여 파3 홀에서 양파를 깠다. 마지막 파 5홀에서 파를 기록해야 목표를 달성하는데, 아름다운 티샷에 이어 두 번의 워터 해저드로 깨백은 공처럼 물속에 잠겼다. ‘잡았다!’ 싶었는데, 기대와 흥분은 밤안개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버디의 기억은 꿈처럼 아련하기만 하다.
권프로가 다가와 위로했다. “안기자 대단해, 버디를 두 번이나 하다니!” “버디를 두 번 하고도 깨백을 못 하다니!” “깨백은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하다 보면 어느덧 되는 거야.” “너희한테 민폐 끼치기 싫어서 하는 소리야. 나 안 부끄러워?” “민폐라니, 전혀 안 부끄러워. 어떤 초보가 한 경기에서 버디 두 개를 잡냐? 지난번보다 많이 늘었어.(순둥순둥 웃음)” “고맙다.(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