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타그램
지난 주말 2호의 친구 준이 집에 놀러 왔다. 한 살이 많지만, 두 학년 합쳐봐야 남자는 다섯, 독수리 오형제 중에 둘이 제일 친하다. 준은 내 책의 최연소 독자이기도 하다. 그는 “제가 읽은 책 중에 제일 재밌었어요!”라며 엄지척을 했다. 특히 2호가 등장한 이야기를 좋아했다.
집에 오는 길에 물었다. “작가와의 만남 할래?” 그는 단호히 대답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란 게지. 친구랑 게임하러 오는 건데, 작가는 무엇, 만남은 개뿔…. 게임하는 아이들의 행복한 기운은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저런 놈을 완독시키다니, 그걸로 만족.
둘이 닌텐도 골프를 쳤다. 많이 해본 2호와 달리 준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때 나는 말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 망쳐도 많이 쳐야 잘하게 되지. 망해야 잘한다, 오케이?” 준은 “맞습니다!”하며 망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시간 후 “우와, 재밌다!”
“망할 용기. 얼핏 들으면 욕 같은 이 말이 글을 쓰는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손에 쥔 게 아무것도 없던 아버지는 망할 기회가 없었고, 손에 딱 한 개만 쥔 나는 망할 용기가 없었다. ‘망해야 잘한다’며 아이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는 말이 거짓이 되지 않으려면, 내가 먼저 망할 용기를 내야 한다.”(<아파서 시골에 왔습니다>, 210쪽)
준은 의도치 않게 작가와의 만남을 하고 갔다. 아이들 앞에서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망하는 나에게 ‘잘했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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