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범

촌스타그램

by 안효원

평생 태양을 피할 줄 몰랐다. 어려서 집에 놀 게 없어 무조건 밖으로 나갔고, 커서는 농사를 지으며 햇님과 조우했다. 주변에서 선크림을 바르라고 했지만 곧 얼굴이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되는데, 크림은 무슨…. 하지만 점을 빼고 햇빛을 보지 말라는 병원의 말은 무시할 수 없었다.


이럴 때 집에 가만히 있으면 좋으련만, 밖에 나갈 일이 더 생겼다. 선글라스를 끼고, 마스크를 하고, 챙이 큰 모자를 썼다. 속으로 ‘남들이 보면 연예인인 줄 알겠다.’라고 생각할 찰나, 부천댁이 웃음을 못 참고 말했다. “그러고 애들 학원 가려고? 누가 보면 납치범인 줄 알겠다!”


방에서 나온 1호가 말했다. “아빠, 마스크에 그거 뭐야? 새 부리야?” 마스크를 쓰면 안경에 김이 서려 코 아래로 구멍을 뚫었던 터다. “연예인 같지 않아?”라고 묻자 딸은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얼굴이 아니야. 연예인은 그렇게 가리면 다 가려진다고. 아빠는 남는 게 너무 많아.”


운전 중에 웬만한 접촉 사고를 내도 시비 걸지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뒤에 숨는다는 게 무서운 일이다. 믿었던 2호가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아빠, 절대로 차에서 내리지 마. 오늘은 내가 아빠 찾아서 갈 테니까.” 태양을 피할 줄 몰랐던 사내는 그렇게 납치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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