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낯섦

촌스타그램

by 안효원
음악, 음성, 이미지 출처: CBS 음악FM ''김정원의 아름다운 당신에게'


어쩌다 기자가 되었을 때 나는 멋쟁이였다. 얼마나 글에 멋을 부렸는지 초고를 완성해 출력하면 A4 용지가 무거웠다. 처음 만난 편집장은 겉멋 뿌리뽑기 귀신이었다. 원고가 일단 그녀의 손에 들어가면 시뻘겋게 변했고, 양도 반으로 줄었다. “효원, 독자의 시간을 아껴주자고!”


그때부터 나는 글을 쓰는 시간만큼 줄이는 시간을 들였다. 보고 또 보고, 줄이고 또 줄이고. ‘그래, 나는 지금 독자의 시간을 아끼는 중이야. 나무도 덜 베고 얼마나 좋아?’라며 스스로 주문을 걸었다. 버리기 아까운 문장, 표현이 있으면 ‘이 문장은 다음 책에 쓰자!’라고 다독였다.


독자의 시간을 줄이기 위한 나의 시간이 늘어나면서 내 원고에 별 감흥이 없어졌다. 처음 쓸 때는 컴퓨터 앞에 앉아 혼자 깔깔대고, 때로는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좋은 것도 한두 번이지, 나중엔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다행히 독자들은 깔깔 웃었고, 마음이 움직였다.


어제(18일) 사촌 형이 전화했다. 형수가 CBS 음악 FM 라디오를 듣는데 내 책이 나온다는 거였다. ‘아름다운 당신에게’의 진행자 김정원이 <아파서 시골에 왔습니다> 프롤로그 두 페이지를 낭독했다. 타인의 목소리로 들으니 글이 새 생명을 얻은 것 같았다. 새로운 낯섦을 느꼈다.


“아파서 시골에 내려왔을 때 커다란 환대를 받았다. 어릴 적부터 알던 사람들이라 그렇기도 했지만, 요즘 농촌에서는 출생신고서에 잉크도 안 말랐다고 취급받는 ‘서른의 아기’가 생겨서이다. 몸이 성치 않았던 탓에 처음에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고,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n분의 1이 아니라 온전한 하나가 되었다. 사람 귀한 곳에 살다 보니 귀한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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