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머리 연대기

촌스타그램

by 안효원

영화 <방자전>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남자가 10이면 머리가 9이다.’ 옆자리 친구는 깔깔댔고, 웃기고 자극적인 영화를 보면서도 나는 ‘숱무룩’했다. 살면서 9의 도움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날 때부터 그런 건, 맞다. 돌사진을 보면 사람들이 묻는다. 삭발한 거야?


학창 시절, 머리에 무스를 바르고 오는 친구를 보면서 ‘세상 참 힘들게 산다.’라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 부러웠다. 그래서 오히려 군대 있을 때가 편했다. 덜 잘라도 누구보다 짧았으니.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 ‘효원이 머리계’가 결성됐다. 이번에 책을 많이 사준 동기들이 만든 거다.


이마는, 나의 영성과 닮았는지, 꾸준히 하늘을 향했다. 마음속으로 ‘상관없9’를 외치며 살았는데, 가끔 도시에 나가 마주한 현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정수리가 보이는데, 아흑, 이건 40일 가뭄을 겪은 콩밭이다! 그때 별 말 없이 사는 부천댁의 사랑을 느꼈다지.


10년 후 꽃중년 작가가 되겠다고 선언하고 한 달 전부터 탈모약을 먹기 시작했다. 꽃잎 마냥, 바람만 불어도 날리던 머리가 힘이란 걸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미세한 풍성함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오늘 태어나 처음으로 머리에 힘주러 간다. 나의 전속 미용사는 알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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