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껏, 대충

논이 활짝 웃는다

by 안효원

“논 갈러 화요일에 가요. 건축 첫날은 봐야죠.” “응, 그래!”하고 아버지는 월요일에 혼자 논으로 내뺐다. 일을 안 하면 손에 가시가 돋나? 하루를 기다릴 줄 모른다. 하루 늦게 논에 갔더니 많은 논이 속살을 빼꼼 내놓고 있었다. 겨우내 얼었던 흙이 봄볕을 맞으며 기지개를 편다.


12년 전(?) 처음 논을 갈 때는 땅이 아니라 내 영혼이 갈렸다. 아버지에게 방법을 물었을 때 “대충”이란 답이 돌아왔고, 나는 대충을 몰라 물 한 방울 없는 논에서 허우적댔다. 논을 일정한 깊이고 갈고 싶었고, 어느 곳 하나 안 갈린 곳 없게 하고 싶었다. 그러니 괴로울 수밖에….


아버지보다 몇 배의 시간을 허비하고 나오면서 그의 눈치를 살폈다. 10점 만점에 몇 점인지 궁금했다. 이게 다 경쟁 위주의 교육 시스템이 만들어 놓은 폐해다. 그냥 논 갈면 됐지, 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덜 갈린 곳 있으면 로터리 칠 때 더 신경 쓰면 될 것을….


이제는 거침없다. 덜 갈리면 또 갈고, 깊이 박히면 쟁기를 올리면 된다. 논의 가장자리는 늘 깊어지니 대충 가는 걸로…. 12년 동안 논을 갈면서 아버지가 말하는 ‘대충’이 무언지 짐작할 수 있게 됐다. 내 일 하면 그만이지, 논에서 정성껏 땀 흘리며 말이야. 논이 활짝 웃는다.


영상에 나오는 논은 <아파서 시골에 왔습니다>에 등장하는 태 할아버지에게서 산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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