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푹 빠져 ‘TAPIES’가 무슨 뜻인지 물었다. 청년은 열심히 말하는데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때 어제 김차장이 가르쳐준 베트남 영어의 특징이 떠올랐다. “여기는 S 발음이 약해.” 서로 귀를 기울인 덕분에 우리는 결국 그가 예술가라는 걸 알아챘다.(김차장의 생활 경험 영어: 베트남은 마지막 발음(S, T, D)이 약하다. 나이스->나이, 마싸지->마싸, 아이스->아이.)
마음이 통하는 유쾌한 경험으로 발걸음마저 가벼워졌다. 이제 마지막 목적지 서호공원(Công viên nước Hồ Tây)에 도착하면, 가이드 미션 성공! 그런데, 주택가로 접어들자 구글 지도로 길을 찾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소박한 랜드마크도 없으니, 골목은 다 똑같이 생겼고, 한참 가다 보니 막힌 길. 나는 열심히 길을 찾고 있지만, 김사장은 길을 잃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나는 지친 김사장의 모습에 압박을 받았다. 결국 지나가는 청년을 붙잡고 길을 물었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통하는 말은 ‘신짜오’와 ‘깜언’ 뿐. 서로 난감한 상황에서 그는 웃으며 앞장서 걸으려고 했다. 우리를 그곳까지 데려다주려는 것.(나중에 보니 30분 정도 거리로 확인.) 그 마음이 매우 고마웠지만, 괜히 글로벌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정중히 거절.
비슷한 경험이 떠올랐다. 시간을 거슬러 25년 전, 고등학생 시절, 의정부. 터미널에서 미군이 ‘의정부역 어떻게 가냐?’고 물었다. 말로 설명할 순 없고, 그냥 돌아설 수도 없어 내뱉은 말, “팔로 미.”(따라오셔) 미군이 바싹 붙으면 행여 말을 걸까 빨리 가고, 뒤처지면 외쳤다. “오버 히어.”(이쪽이라고) 결국 15분을 걸어 역이 보이는 곳에서 웃으며, “오버 데어!”(바로 저기!)
보통의 여행자는 걷지 않을 길, 택시를 타면 절대 가지 않을 길을 지나 ‘Thung lũng hoa hồ Tây’에 도착했다. 지나면서 보니 꽃이 많은 정원인데,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아저씨 둘이 가기는 좀 그렇지만, 그 고생을 하고 왔으니 안 들어갈 수도 없다. 무엇보다, 김사장의 얼굴에서 표정이란 게 사라졌다. 말은 계속 “괜찮다”고 하지만, 그도, 나도 괜찮지 않았다.
예리한 칼처럼 날카로워 오히려 답답한 세상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 싶다가도, 무턱대고 좋은 사람들, 애쓰며 사는 사람들을 보면 힘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