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가 보이는 식당에서 카레와 런치 맥주를 먹었다. 김사장은 곧바로 커피를 원했지만, “아니야, 조금 더 가보자.” 혼잡한 길을 지나, CGV 화장실을 들러도, 카페가 안 나와 똥줄이 탔다. 걷고 또 걷고, 빵빵 소리에 정신이 멍해질 무렵 예쁜 카페가 나왔다. TAPIES coffee. 둘은 동시에 “여기다!” 외쳤다. 깔끔한 분위기, 친절한 사람들, 건물 사이 야외 공간이 좋았다.
실내도 좋지만, 실외가 더 좋아 밖으로 나갔다. 핸드드립 커피를 시켜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외국인 여행자가 들어왔다. ‘나오지 마라, 나오지 마라’ 김사장과 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 주문을 걸었지만, 놈들은 주문하고 바로 나왔다. 괜히 한번 말을 걸어볼까 싶었지만, 그러기엔 너무 피곤하다. 하지만 좁은 공간이라 가까이 앉았고, 서로의 언어는 선명히 들렸다.
차분한 분위기에 안기자는 고해성사를 시작했다. “얼마 전 아내가 쓴 책이 나왔는데, 그 안에 있는 내 모습이 참 별로더라. 힘들다고 우는 사람 마음을, 감정을 왜 받아주지 못했을까. ‘아내가 어려서 그렇다’고 생각하니까 말도 안 통했어. 딱 지금 옆에 있는 애들이랑 우리와 같아. 같은 공간, 가까이서 말을 하지만 대화가 안 되더라. 그런데 정작 어리고, 모자란 건 나였어.”
“몇 년 걸렸냐?” 김사장이 물었다. “5년. 사람은 누구나 똑같고, 서로의 감정을 받아줘야 하며, 그래도 여전히 이해를 못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데, 5년 걸렸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김사장, “오, 빠른데? 난 10년 걸렸어. 같이 못 사는 줄 알았다야. 다행히 우리 와이프가 천사야. 정말 힘든 시간을 견디면서, 나를 사랑하고 구원해줬어.”
우리 두 사람은 말이, 마음이 잘 통한다. 비결은 테이블에 놓인 핸드드립 커피 주전자와 잔에 있다. 한 사람이 주전자를 기울이면 한 사람은 잔을 낮춰 커피를 받는다. 상대에게 좋은 것을 주려는 마음과 상대의 말을 온전히 담으려는 마음. 다른 생각이 있어도 일단 경청, 조심스레 자기 것을 꺼내면 서로 다름을 인정. 커피는 식어도, 대화가 즐거워, 커피 맛은 여전히 좋다.
"그날 이후, 남편의 충고와 판단은 많이 줄었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전하며 "진짜 어이없지 않아?"라고 물으면, 영혼 없이 "진짜 어이없다"라고 할지언정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엄마의 책장>, 윤혜린)
마음 통하는 사람 만나기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그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점점 알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