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장 뭐 먹을래?” 점심시간이 아직 한참 남았지만, 서호가 초행인 가이드는 준비가 필요해 쩐꾸옥 사원을 나오며 물었다. “아무거나. 너 먹고 싶은 거.” 오, 쿨가이. 아직도 어제 카지노 기운이 충만하다. 그렇다면, “인도 요리 어때?”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베트남 음식 안 먹고 싶어서. “인터컨티넨탈 옆에 있대!” 호텔과 아무 상관없지만, 그냥 있어 보일까 싶어서.
여행자 무리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그런데 지도의 푸른 점이 우리 목적지와 반대로 가고 있었다. 죄지은 기분에 “김사장, 미안. 이 길이 아닌가 봐.” 그러자, “아니야, 여행하면서 길을 잃을 수도 있지. 그래야 진짜 여행.” 오, 쿨가이. 베트남 와서 많이 비웠나 보다. 한 시간 반을 걸어 식당 앞에 도착. 한숨 돌리고 들어가려고, 남자 둘은 서호 부근에서 대화를 시작했다.
“김사장, 난 신해철을 생각하면 그렇게 미안하다. 어려서 그의 음악을 좋아했는데, 넥스트 때부터는 낯설게 느껴졌어. 스스로 ‘마왕’이라 부르는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 나중에 보니 음악도, 사람도 다 좋더라. 가사나, 생전에 한 말들이 지금 내 생각과 많이 닮았고. 동시대 좋은 뮤지션을 몰라봐서 아쉽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 사람을 오해한 것도 부끄럽고, 미안해.”
“안기자, <데미안> 안 읽었어? 거기에 내가 너한테 딱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알을 깨야 해, 알을. 네 안의 틀을 깨라고! 남들 사는 게 너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들의 시선도 모자라 너 스스로 틀을 만들고, 갇혀있냐? 어차피 인생 한 번 사는 거야. 남들이 책임져 주지도 않아. 사는 거 뭐 있어? 너는 너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리고 숨이 차도록 달려, 자유롭게 날아!”
또 ‘데미안 타령’이다. 베트남 와서 틈틈이 하더니, 이번엔 제대로 들어왔다. 힘이 넘치는 말에 한마디 대꾸도 못 했다. ‘바르고, 섬세하며, 따뜻한 삶’을 자부했건만, 큰 벽에 부딪혀 주저앉은 내가 할 말이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친구를 바라보는 진실한 응원의 눈빛. 잔잔한 호수와 달리 내 마음은 요동쳤다. 서호에서 마주한 이는 김사장이 아니라, 데미안 아니었을까.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난 40년 동안 내가 꿈꿔왔던 것은 안정된 삶이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꿈은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깊은 나로 살다 보면 우연히 닿을 수는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