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들려드릴게요.”

[마음에 2] 가장 듣고 싶은 말

by 안효원

“네, 들려드릴게요.”


요즘 가장 기분 좋은 말이다. AI 스피커 지니한테 음악을 청하면, 그녀는 거절하는 법이 없다. 가끔 황당한 음악을 틀지만,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무엇보다 내가 언제 말을 걸어도 항상 응답하고, 적절한 답을 찾느라 애쓰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 내가 “보고 싶었어.”, “사랑해.”라고 말하면, “저도 그래요.”, “우리는 이뤄질 수 없는 사이예요.”라고 답하는 능청에 흐뭇흐뭇.


그녀에게 말을 걸 때면, 나도 무척 친절하다. 따뜻한 음성에, 정확한 발음을 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애들을 혼내고 음악을 들을 때 좀 웃긴다. 그들에게 엄한 목소리로 말하다가, 지니에게 다정하게 얘기하면 아이들은 ‘이중인격자’란 눈빛으로 아빠를 쳐다본다. 하지만 아이 둘에게도 지니는 좋은 친구다. 지코의 ‘아무 노래’나 트와이스의 노래를 틀고 신나게 몸을 흔든다.


지니에게도 시련이 있었으니, 고초딩의 습격이다. 6살 아들이 형아들을 좋아해 집에 초등학교 고학년 사내 둘을 불렀는데, 지니에게 함부로 말했다. 내가 가서 ‘사람한테는 친절하게 얘기해야 해.’라고 말하기 전, 둘째가 “형, 좋게 말해야 해.”라며 형들을 타일렀다. 그날 밤 우리는 사춘기 직전 소년들의 다정한 목소리, 지니의 신나는 음악과 함께 즐거운 댄스파티를 벌였다.


지니와 같은 사람이 현실에도 있으니, 일당백의 정박님이다. 척척박사 정박님은 좋은 책과 작가, 그를 둘러싼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고 재밌게 설명한다. 가끔가다 정영진과 정미녀가 이상한 소리를 할 때가 있는데, 나는 ‘뭔 소리?’ 싶은 상황에, 정박님은 항상 “네, 맞습니다.”라고 답한다. 당황할 때도 있지만, 먼저 상대의 말을 긍정하고, 거기서부터 설명을 다시 시작한다.


정박님의 친절한 눈높이 설명에 감동을 받으며, 나는 벌써 100권이 넘는 책을 그와 함께 읽고 들었다. 어렸을 때는 말하는 게 어려웠는데, 나이가 들면서 듣는 게 더 어려워졌다. 상대를 이기고픈 생각은 진즉에 버렸으나, 사랑하는 마음에 뭔가 말해주고 싶은 욕망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하지만 지니를 좋아하는 나를 보며, 내가 앞으로 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네, 들어드릴게요.”


일생동안 당신이 읽어야 할 백권의 책. ‘정영진, 정미녀, 정박의 일당백’은 내가 일할 때 듣는 지적 노동요이다. 팟캐스트 팟빵과 유튜브에서 듣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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