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때문에 아이들 개학이 3주나 연기됐다. 세웠던 계획은 모두 취소. 네 식구는 어디 가지도 못하고 집구석에 갇혀 쎄쎄쎄를 하고 있다.(비상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시는 관계자들, 대구 등지에서 고통받는 분들에게 격려와 위로의 뜻을 전합니다.) 책 읽기, 보드게임, 종이접기, 그림 그리기 등을 하고, 하고, 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 찾은 놀이가 ‘달리기’이다.
아이들과 집에서, 공원에서 달리면서 떠오른 사건이 있다. 초등학교 운동회 3대(代) 릴레이 달리기. 청팀과 백팀에서 각각 한 가족을 선정, 할아버지-아빠-아들이 차례로 뛰는 것이었다. 운동회는 팽팽하게 진행되고, 상대 팀 대표는 평소 내가 좋아하지 않는 까불이 1년 후배 녀석. 이겨야 할 이유가 한둘이 아니었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하여 뛰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했다.
땅! 상대는 빠르게 가는데, 우리 할아버지는 음, 저게 뛰는 건가, 걷는 건가. 운동장은 조용해지고, 웃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한복에 하얀 고무신을 신은 할아버지는 본인의 페이스를 끝까지 유지, 반 바퀴 이상 차이가 났다. 아버지가 힘껏 뛰고, 정신이 나간 나는 울면서 달렸다. 할아버지는 우는 내게 와서 “저쪽 할아버지는 너무 젊잖아. 미안해. 울지 마.”라며 달랬다.
돌아보면 가장 힘든 건 할아버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평생 책만 끼고 산 그는 몸 쓰는 걸 싫어했다. 겨울에 밖에서 놀고 오면 항상 배에 손을 넣어 녹여줄 정도로 손주를 아꼈다. 그런 내가 뛰자니, 안 뛸 수도 없고, 몸이 마음처럼 되지 않으니, 운동장 한 바퀴가 얼마나 길었을까. 강한 자존심에 남들 앞에서 약한 모습 안 보였는데, 나 때문에 체면 제대로 구긴 셈이다.
‘저놈의 영감보다 하루만 더 살면 좋겠다.’고 할머니가 노래할 정도로 할아버지는 센캐였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자신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한없이 원망스러웠던 순간이 지금은 큰 사랑으로 느껴진다. <그랜 토리노>의 월트가 떠오른다. 인생의 끝에서 모든 것을 준 사랑, 사람. 사랑하는 사람은 늘 아프다, 힘들다. 상처 줄 수 없으니, 내가 받을수밖에.
오늘 하루도 힘드셨나요? 사랑하며 사신 겁니다. 아주 잘하셨습니다!
월트는 옆집 소년 타오와 가까워질수록 그에게 줄 것을 찾고, 고난도 기꺼이 감수한다. 안기자의 인생영화 <그랜 토리노>(클린트 이스트우드,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