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이는 참 사랑스럽다. 용식이(강하늘)도, 동네 남자들도, 많은 시청자도 그녀를 사랑했다. 동백이(공효진)를 대하는 태도는 두 가지다. 용식이는 맑고, 밝은 그녀를 한없이 좋아한다. 동네 남자들과 여자들은 동백이가 좋은 사람인 건 인정하지만, 미혼모, 술집 사장 등을 이유로 뒤에서 수군수군한다. 용식의 엄마 덕순 씨(고두심)도 동백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조르바가 동백이를 만나면 어떨까? 조르바는 믿지도 않는 하느님께 감사하며 다가갈 것이고, 동백이는 혹시 끌리더라도 “잠시만요.” 하면서 뒷걸음질 칠 것이다. 그녀가 그러는 건 조르바 때문이 아니다. 그는 숱한 여성들을 사로잡은 매력남. 하지만 동백이는 어느덧 사람들의 곱지 않는 시선을 차단하고, 아들을 지키기 위해 자기감정을 감추는 게 생존 전략이 되어 버렸다.
동백이 입장에서 생각하면,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자기를 미혼모, 사회적 약자로 생각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 반가울까? 아니면 딱히 돕는 건 없더라도, 자신을 아무런 편견 없이 존재 그 자체로 대하는 사람이 좋을까? 살아 숨 쉬는, 감정이 풍부한,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보통의 여인, 사람으로 바라보고 교감할 때 동백이는 꽃을 피우지 않을까?
10년 전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을 때, 매우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성을 만나는 방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많은 여성을 만나는 것도 그렇지만, 여인들이 그를 좋아하는 것도 그렇다. 그런데 이제는 알겠다. 조르바는 여인을 판단 혹은 소유 가능한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존재 자체로 아름다운 꽃봉오리로 바라봤던 것을! 여인들은 그 눈빛을 알아채고, 감춰진 꽃을 화려하게 피웠다.
사람을 꽃으로 만드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긍정하고, 그 안에 있는 가능성, 작은 씨앗을 감싸는 따뜻한 바람이다. 그의마음에 귀를 기울여 물과 햇빛을 주면 더 좋다. 하고 싶더라도, 모르는 척하더라도,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은 꾹 참자. 너무 차갑다. 사랑 없는 말로 상대를 아무리 열 받게 한대도, 세상의 온도는 1도 오르지 않는다.당신은 예뻐요, 봄을 부르는 소리.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다른 누군가를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는 것은, 모두가 외로워지는 일이다. 사랑이 없으면 조용히 떠나길. 영화 <희랍인 조르바>(마이클 카코야니스, 19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