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괜찮다가도 마음 깊은 곳에서 문득 밀려온다.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다. 매운맛이 미각 아닌 통각이듯, 외로움 또한 감정 아닌 고통이다. 사람은 왜 외로워야 할까. 그대로 받아들일까, 아니면 밀거나 넘어서야 하나. 이럴 땐 질문을 해야지. 그래야 답을 찾지. 가장 존경하는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물었다. 지독한 외로움에 대하여. 그는 답했다. <그랜 토리노>.
‘그랜 토리노’는 1972년 산 포드 자동차 이름이다. 주인공 월트(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손수 만든 차로, 그의 젊음과 인생이 묻어있는 애장품 1호다. 가진 게 적지 않은 그지만, 삶은 풍요로워 보이지 않는다. 말 걸어주는 이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평생을 함께한 아내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났고, ‘아들놈들’은 아버지의 재산에만 관심이 있다. 믿었던 몸도 예전 같지가 않다.
어느 날 월트에게 불청객이 찾아온다. 옆집에 이사 온 타오 가족은 이웃이 아닌 이방인일 뿐. 하지만 동네 갱들이 더 꼴 보기 싫어 소년 타오를 구해준다. 차를 훔치던 타오도 보기 싫었지만, 용서를 구하며 다가오는 그를 밀어낼 수는 없다. 그런데 얼굴 찌푸리던 사람들과 말을 섞으면서, 삶의 작은 변화가 시작된다. 침묵의 냉기는 사라지고, 거친 말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월트는 외로운 인물이다. 아내의 장례식에 참석한 아들과 손주들에게서 따뜻한 가족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동네에는 아시아인들이 그득해져, 더 이상 그가 사랑했던 공간이 아니다. 또 그는 이미 병들고 노쇠해, 홀로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이런 그에게 ‘참회하고 구원을 받으라, 천국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다시 만나라’는 신부의 말이, 진심이라 해도,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이 지독한 외로움이 영화의 시작이자, 평생 보지 못한 놀라운 진실을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평소와 같이 석양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던 월트는 수의 파티 초대를 받는다. 갈까? 평소의 그라면 절대 가지 않았을 것. 하지만 맥주는 떨어졌고,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이니까. 생일날 혼자 육포를 뜯으며 맥주를 먹는 것보다 못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가자!
월트는 낯선 사람들의 음식, 문화, 감정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그동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가장 외로운 순간, 더 이상 물러날 수 없을 때, 외로움을 마주할 새로운 용기가 생긴 것. 노년의 거장은 ‘지독한 외로움’을 ‘새 세상 진입로’로 환원하면서, 인생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리는 살아있는 한, 봄을 보게 될 것이다. 영원한 겨울은 없으니.
월트에게 옆집은 오지에 가깝고, 그곳에 간 것은 큰 모험이었다. 하지만 이 여행에서 그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자신의 삶에 새 생명을 불어넣을 사람들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