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작년 가을에 보낸 나만의 여행이 생각난다.
요즘 코로나 덕분에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 나름 지치고 힘들었던 모양이다.
육아를 도맡아 하다 보니 해마다 한 번씩 나에게 한계점이 다달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나의 시간을 요구했었다.
처음에 첫째를 출산하고 일 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나에게 고비가 찾아왔었다.
그때는 큰애를 데리고 무턱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에 살고 있던 동생을 만나 며칠을 잘 보내고 왔다. 그 후로는 아이를 두고 혼자 여행을 가겠다고 했지만 남편은 늘 흔쾌히 허락을 해 주었다.
세상 감사한 일이다. 남편도 일하느라 늘 힘들 텐데 나에게 이런 시간을 주는 것이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마음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복직으로 시간을 보내던 때 , 둘째 임신 소식을 알게 되었고 둘째 출산 후 다시 고비가 찾아왔다.
처음에는 정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겠노라 생각하고 고민을 했다. 멀리 가자니 시간도 그렇고 가까운 일본이나 국내 여행을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옛날의 나였다면 겁 없이 혼자 당장이라도 공항으로 가서 지금 뜨는 비행기를 붙잡거나 서울역으로 달려가 기차를 타겠다며 짐부터 쌌을 텐데 현실은 겁이 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어쩌지? 내가 무슨 일을 당하면 누가 연락을 해주지? 내 남편과 아이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흔들어 놓았다.
둘째 출산 후 나의 첫 휴가인데 내 가족과 아이의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엄마라는 타이틀은 역시나 어깨가 무거운 일이었다.
하루도 아닌 삼일을 밖에서 보내야 하는 엄마의 마음이 세상 마음 편한 일은 아니었다.
문득 남편을 만나기 전부터 함께 여행을 즐기고 자주 만나고 했던 동생이 생각났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내 동생보다도 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동생이다. 그 동생에게 연락을 했고 때 마침 일본으로 친구와 여행을 간다고 했고 난 그사이에 혼자 여행을 떠나 합류하기로 했다.
출산하고 혼자서 출발 한 공항의 냄새는 잊혀지지 않는다. 무척 설레고 행복했다.
우연히 발견하고 너무 예뻐서 보관만 하던 파란색 가죽케이스에 여권을 꽂고 혼자 공항을 누볐다.
면세점도 구경하고 돌아와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며 앉아있는데 엉뚱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마저도 신이나 금세 또 탑승게이트를 찾아 나서면서도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만나 밤새도록 놀아보자며 함께 해준 동생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하품하며 새벽에 돈코츠 라멘까지 먹고 숙소에 들어온 아줌마는 눕자마자 머리 대고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오늘은 어디를 갈 거냐? 묻고 귀찮게 굴었던 나도 떠오른다.
그때 누구보다 간절했고 누구보다 행복했으며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었던 모양이다.
항상 비슷하게도 일 년에 한 번쯤은 이 고비가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당연스럽게 그 동생을 찾는다. 나는 은희가 참 좋다. 해마다 함께 해줘서 좋다!
작년에도 그 고비가 찾아왔다.
부산에 무척 가고 싶어 졌다. 막내들 임신소식을 알기 직전에도 은희와 함께 부산에 있었다.
나는 그 친구가 있으면 참 마음이 편하다. 가끔 만나도 좋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해도 마음이 참 잘 맞는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나에게 되물어도 나는 언제나 흔쾌히 허락을 한다.
그렇기에 평소처럼 연락을 했다.
아이 넷을 맡기고 떠나는 입장이라 시간은 1박 2일뿐이었다.
1박 2일 동안 나는 어떻게 스케줄을 짜야 정말 알차게 내 시간을 보내고 올 것인가를 고민하던 찰나에 은희에게 새로운 제안을 받았다.
"언니, 어차피 시간도 짧은데 기차표랑 숙박비까지 해서 몇 십만 원을 쓰느니 그 돈으로 맛있는 거 먹고 근처에서 즐기는 건 어때?"라는 질문을 받았다.
부산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고집을 부렸는데 그 질문을 받고는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주로 이사 오고 한동안 서울 앓이를 했었다. 서울에 가서 다시 살고 싶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모든 곳이 근접한 생활환경 조건에 비해서 양주는 내게 너무 먼 곳이었다.
버스 한번, 지하철 한 번이면 미술관이며 공원이며 공연장이며 어이든 갈 수 있는 곳이었기에 나는 늘 서울을 그리워했었다. 양주에 이사 온 직전에는 면허만 있고 운전은 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었으니 가장 가까운 의정부에 있는 백화점을 갈래도 택시비만 보통 18000원을 내고 다녀야 했다.
그 돈이 아니라면 45분 배차 간격의 버스를 하나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 다시 의정부까지 가야 했다. 아이를 잠시 맡기고 나오는 나의 일정에 45분의 배차간격은 꽤나 타격이 컸다.
그래서 은희의 제안으로 나는 서촌의 숙소를 검색했다.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정말 마음에 드는 곳을 예약하기는 힘들었지만 꽤 괜찮은 숙소를 찾아 예약했다.
예전 같으면 첫째와 둘째는 보내고 버스를 타고 나올 수 있는 곳이었는데, 나만의 시간을 채우는 여행이라고 하니 모든 상황을 바라보는 내 시선도 달라져 있었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나는 은희와 만나기로 한 망원동으로 향했다. 1박 2일의 여행이라지만 짐을 좀 챙겨 들고 나오다 보니 집 나온 아줌마 같았다. 빵빵해진 짐가방을 들고도 모든 것이 즐거웠다.
은희와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빨리 나와 검색해 놓은 카페를 찾아갔다.
카페에 들어서 커피를 주문하고 두리번거렸다. 내 눈에 가장 좋아 보이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카페 주인은 커피를 가져다주며 나에게 말했다. "손님 이 자리는 4인 좌석이라 혹시 다른 손님이 이 오시면 자리를 2인석으로 옮겨 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커피와 함께 가방에 싸온 책 한 권을 꺼냈다. 그렇게 은희를 만나기 전 커피와 책으로 나만의 시간을 보냈다. 순간순간이 너무 즐거웠다.
은희를 만나러 가는 길에도 나는 망원동을 누비며 두리번거렸다. 누가 봐도 딱 시골 촌년이 따로 없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모든 것이 즐겁고 모든 것이 예뻤다.
하늘도, 길에 흩날리는 은행잎도 내 마음을 가득 행복함으로 채워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 그 속에 채워진 나의 일상들과 시간들이 또 이렇게 추억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나는 매번 나를 만나러 간다.
나의 시간으로 가득 채원진 그곳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맛있는 커피와 밥을 먹으며 나를 충전해 간다. 즐거움이 가득한 그 시간만큼은 휴대전화도 잠시 내려놓는다.
오롯이 사진을 찍는 일만 행할 뿐이다.
서서히 그 고비가 다가오고 있다. 이번에 나를 만나를 시간은 또 어떻게 만들고 채워갈지 궁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