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다. 마지막 직장에서 처음 만나 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준 사람이다. 나는 그런 순필 언니를 유난히도 좋아했다. 크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나의 뮤즈 같은 존재였다.
언니를 닮고 싶어 했고 언니의 감성을 동경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있듯이 나는 모방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서서히 언니를 많이 닮아 보려고 나 스스로도 노력했던 것 같다. 언니가 스크랩 해 놓은 자료를 보며 취향이라는 게 조금씩 변해갔다.
언니가 좋아하는 색에도 눈을 뜨고 언니의 그림선을 꽤 많이 따라갔었다.
우연히 순필 언니의 생일이라 연락을 했고, 언니와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렇게도 바라던 셋째의 임신소식과 함께 만난 언니는 여전했다. 여전히 나에게는 멋진 여자였다.
언니를 만난다는 설렘으로 요즘 내가 사용하고 있는 나무 칫솔과 고체 치약을 선물로 주었다.
종이 충전제로 둘둘 감아 리본 끈으로 질끈 묶어 볼품없는 포장이었지만 언니는 참 예쁘다고 말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참 유행을 잘 따르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던졌다.
나의 귀를 의심했었다. 유행이라...
나에게 그런 게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 적잖이 놀랐다.
나는 되물었다. "유행이요? 제가요?"
언니는 당연한 듯한 표정으로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고 했다.
언니가 바라보는 나는 그랬구나, 새삼스러웠다.
우연히 책을 하나 보았는데 제목이 무척 귀여웠다.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라는 제목에 끌려 우연히 책을 보았다. 그때부터 제로 웨이스트라는 명칭에 대단한 관심이 생겼던 것 같다.
그를 시작으로 허유정 작가님의 sns를 팔로우하고 정보도 많이 얻었다.
그를 시작으로 분리배출을 더욱 열심히 하고 텀블러나 손수건도 챙겨 들고 다니며 면 생리대라던지 나무 칫솔과 고체 치약 그리고 비누 등으로 제품을 변경하며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작가님의 온라인 강의도 듣게 되었고 제로 웨이스트라는 태그에 관심을 갖고 다른 사람들은 쓰레기를 어떻게 줄여 나가는지에 대해 유심히 찾아보기도 하였다. 그때 우연히 지선님의 sns를 보게 되었는데 쓰레기를 사진으로 남겨 놓은 피드를 보고 참 신선하게 다가왔다. 지선님처럼 매일은 아니지만 주말 동안 쌓인 쓰레기 사진을 남기며 나도 반성하고 줄이기를 노력했던 것 같다.
나 나름의 노력이 있었는데, 유행이라는 말 하나에 나는 의기소침해졌다.
생각해보면 나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 먼저 문을 열어 주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 공들여 열어놓은 문을 큰 거부감이 없이 들어가 보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깨달았다. '아, 나는 그런 사람이었구나!'
유행이라고 해서 같은 옷, 같은 신발, 같은 가방을 메고 같은 공간에서 마주했던 부끄러움이 아닌 좋은 것, 멋진 일에 같은 모습을 하고 마주하며 나만의 만족감 혹은 성취감에 취해 나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던 것 같다. 단순히 '유행'이라는 말만 듣고 거부감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유행도 나쁜 건 아니구나, 이것도 하나의 트렌드인데 내가 너무 어리석었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누구나 좋은 일을 함께 하고 싶고 멋진 일은 함께 만들어 가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좋은 일, 멋진 일을 꾸준히 따라가다 보면 결국 또 다른 내 것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결국 보고 듣고 느끼며 나의 취향으로 고스란히 묻어나 있을 테니까 앞으로는 유행에 부담스러워하거나 부정적인 마음으로 편해하기보다는 두 팔 벌려 끌어안아주고 인정해 주며 나를 발전하는 모방으로 일삼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