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주댁민댕씨 Dec 23. 2021

나의 소울 메이트

일이 힘들어 지칠 때면 은희가 일하는 매장에 들러 푸념을 늘어놓고 커피 한잔을 얻어 마신다.

그러던 어느 날 은희네 매장에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이 왔다.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안녕, 대범아!"


그런 막내는 어느 날부턴가 저녁도 함께 먹기 시작했다. 알바가 끝나고도 남은 시간에 누나들의 성화에 못 이기고 우리가 퇴근하는 시간까지 연장근무를 자처했다. 그리고 누나들은 밥을 사줬다. 술도 사줬다. 그렇게 우리는 자주 만났다.


어느 날 편지를 써오라는 놀림에 편지 한 통을 적어 들고는 일하지도 않는 토요일 낮에 동대문을 찾아왔다. 농담으로 한 말에 미안함도 있었지만 새삼 또 반가웠다. 토요일 오후 이른 퇴근을 하고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 고민을 하다가 대학로로 가서 한 고깃집에 들어갔다. 점심은 한 30분 만에 후딱 먹고 나섰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식 후 카페에 가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고 떠드느라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게 빙수를 시켜놓고 낄낄 거리며 웃다가 서로의 반대방향의 지하철에서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분명 점심에 고기를 먹었는데 무척 배가 고팠다. 시계를 보니 8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점심은 2시쯤 먹은 거 같은데 도대체 카페에서 웃고 떠들었는지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러다 어느 날부턴가 대범이에게 전화도 자주 오고 편지도 주거니 받거니 했다.


지금도 대범이는 내게 말한다.

"그때 네가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난 전혀 아닌데 내 기억에는 대범이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무슨 소리인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지만 아무튼 내 기억에는 그렇다. 오류일지 모르는 기억 속에 대범이의 풋풋함은 한없이 녹아있다.


그러더니 갑자기 자기와 한번 만나보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튕기듯 생각해 보고 연락하겠다고 했는데 한편으로는 나도 마음먹고 있었던 일이기도 했다. 만나는 동안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던 터라 그걸로 충분했던 모양이다.

싫다고 하면 다시는 안 볼 것 같은 생각에 한번 만나보자고 다시 연락을 했고 크게 좋아하는 마음 없이 만났던 대범이는 정도 많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뚱뚱 해지 배터리의 삼성 휴대폰을 보여주며 휴대전화를 바꾸려고 하는데 뭐가 좋겠냐는 그의 물음에 "전화기는 모토로라지!"라는 한마디와 함께 갑자기 커플폰이 되었던 그때, 갑자기 우리 집 뒷 번호 '8306'을 사용하고 있던 그때 아무 생각 없이 '8316'번호로 받아 놓고 신기해했던 그 젊은 날 가족들 이야기부터 이미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즐거운 연애를 시작했다. 그 후로 우리는 쉴 수 있는 주말이면 데이트뿐 아니라 여행도 즐겁게 다녔다. 카메라 하나 목에 걸고 배낭을 메고 우리는 뚜벅이 여행을 함께 했다. 강원도든 부산이든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가고 싶은 곳을 누볐다. 우리의 첫 해외여행이었던 호주와 뉴질랜드는 여전히 그립다.


그러니 지겨운 줄 모르고 4년이라는 시간을 만났고 비록 어른들의 힘으로 결혼을 하게 되는 순간까지도 우리는 큰 싸움 없이 여전히 잘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당연히 우리는 결혼해야지!"라는 생각이 늘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덕에 그냥 자연스러운 현재의 우리가 되었고 아이 넷을 키우며 살아가는 부부가 되었다.


물론 아이들을 낳고 살다 보면 타격 태격 싸우기도 한다 예전보다 삐져있는 시간이 조금 길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그냥 웃으면 그만인 그런 사이가 되었다. 서로가 있음으로 의지하고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에 함께 즐거워하고 조금씩 어른으로써 성장해 가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너무 감사하다. 별 탈없이 어느덧 우리가 함께 결혼생활을 한지도 10년이 되었다. 우리가 꿈꾸던 10주년 대만 배낭여행은 아니지만 함께 손잡고 걸어 나와 바다를 바라보며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붙잡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내 영원한 소울메이트, 당신이 함께여서 행복하고 감사하다.  우리 한 5년 뒤에는 다시 가고 싶다던 스위스에서 함께 하는 건 어떨지 상상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유행을 따르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