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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주댁민댕씨 Dec 02. 2021

내 자리

양주로 이사를 하면서 몇 개의 가구들을 버리고 다시 사면서 가장  애착을 보였던 것은 바로 식탁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식탁을 무척 좋아한다. 책상보다는 넓고 개방감이 있고 그 위에서는 내가 무얼 하느냐에 따라 용도가 변경된다. 더군다나 책상처럼 사무적이고 딱딱한 느낌이 아니라 뭔가 자유롭다.


첫 신혼집에는 안방에 침대와 함께 긴 책상이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고 가끔 그곳에서 커피도 마시고 책도 보고 혹은 퇴근 후 필요한 업무를 보는 것 또한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첫째가 태어나고 나서부터는 책상이 아닌 선반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가습기나 아이의 장난감들 이라던지 아니면 책들이 가득 올라와 버렸다. 정리한다고 했지만 결국은 나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서서히 주방으로 나의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이유식을 만들다가 잠시 앉아 휴대전화를 보기도 하고 밥을 먹이며 함께 식사를 하고 아이가 장난감에 정신이 팔려 놀고 있으면 커피 한잔 꺼내놓고 잠시 내 시간을 즐겼다.

그때는  몰랐다.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던 터라  식탁이라는 자리가 얼마나 좋은지를!


단순히  자리를 빼앗기고 어디 구석에 처박혀 허겁지겁 무언가를 해결하고 있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그걸 모르고 밖으로 나가 있는 시간이 많았다. 밖에서 조리원 동기들을 만나거나 문화센터를 다니며 엄마들과 어울려 밖에서 밥을 먹고, 밖에서 커피를 마시고, 바깥 구경도 하고 수다도 떨었다. 가끔은 일할  만나던 친구들도 만나고, 학교 동창들을 만나러 가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혹은 2시간 거리의 친정집까지 지하철 왕복으로 이동하기도 했었다. 그냥 돌아다니는 시간이 무척 즐거웠던  같다.


큰애가 어린이집을 가고 둘째가 태어나자 상황이 조금은 달라졌다.

나의 생활 반경은 더욱 좁혀지고, 복직은 꿈도  꾸게 되었다.

동네 엄마들을 열심히 만나 아이들과 노는 시간도 많이 만들어 주긴 했었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었다.

둘째를 출산하고 어머님 덕분에  수업도 듣게 되었고 그것을 시작으로 가끔 꽃시장에서 꽃을 들고  꽃바구니를 만들고 꽃다발을 만들어 선물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자리는 식탁이었다.

그때는 2인 식탁을 사용하던 터라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그 위는 항상 아무것도 없이 깨끗하다 보니 유난히 그 자리를 많이 찾았다. 꽃이 놓인 날이면 자연스럽게 커피나 차를 들고 와 앉았다.

책을  놓고 간식을 주섬주섬 꺼내 먹기도 하고 일기를 쓰기도 했다.


둥이들 임신 소식을 알기  원데이로 들었던 라탄 수업을 접하며 가족들이 잠든 시간이나 아이들이 집에 없는 시간에는 자연스럽게 나무실을 꺼내 바구니나 채반을 만들기도 했다. 나는 점점 나의  자리가 좋아졌다.


 번째의 이사를 앞두고 사실 가구에  욕심이 없었다. 막내 둥이들이 태어  것을 예상하면 경험상 좋은 가구는  금세 충돌 방지 테이프 끈끈이 자국이 가득할 테고 어딘가에 다양한 색으로 낙서가 그려질 것이고 스티커도  세워질 생각을 하니'적당한  사자! 그냥 적당한 !' 온통  생각뿐이었다.

혼수로 장만한 가구도 금세 초라한 모습을 보여 마음은 매우 단단해 묶여 있었다.  마음을 풀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식탁만큼은 욕심이 났다.  것이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집착했는지르겠다.

정말 마음에 드는 식탁을 찾았는데, 내가 새로 산 가구 중에 가격도 제일 비쌌다.

계속 원목의 식탁을 사용해서 그런지 화이트 컬러의 상판이 올라 간 식탁을 갖고 싶었다.

하얀 식탁 위에 꽃을 놓아두고 커피를 내리고 책을 펼칠 생각을 하고 있으니 세상 흐뭇해졌다.

사실 처음에 의자도 하나만 구매했다. 식구가 많으니 밥은 좌식으로 먹을 생각에 하나만 주문했다가 "의자가  개는 있어야지!"라는 남편의 말에 민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결국 추가 주문을 하였다.


주문한 식탁과 의자는 이사를 하고도 한 달 만에 도착했다. 
처음 만난 식탁은 무척 커 보였다. 잘 조율해 맞춰 놓아주신 식탁은 너무 예뻤다.

산후 도우미로 와계셨던 이모님이 "식구가 이렇게나 많은데 의자가 두 개뿐이네?"라며 의아해하셨다. 식구는 6명에 식탁은 4인용이고 의자는 두 개뿐이니 남들이 보이게는 그럴 수다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분명 나의 자리의 지분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사실 짐을 많이 늘리기도 싫었지만 시 부모님이 오셔도 이케아 스툴 몇 개면 불편함이 없었다. 물론 내 개인 적인 생각인 듯하다.


둥이들 때문에 집에 종이와 계시다시피 하시던 어머님 역시 식구도 많은데  의자가  개뿐이냐고 물으셨다. 나는 답했다. 하나만 사고 싶었는데 그래도  개는 있어야   같아  개만 주문했다고 말씀드리며 팬트리에서 스툴을 꺼내왔다.


퇴근 후 우리 집으로 오셨던 아버님께서 식탁에 앉아 맥주 한 캔을 따셨다.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거기 민선이 자리야! 앉으려면 자릿세 내야지!" 당황하신 아버님은 그날 식탁 위에 5   장을 두고 가셨다.  누가 앉던 상관은 없지만 명백히  시간에는 나의 자리임은 분명하다. 지금도 나는 그곳에서 꽃을 만지고 나무실을 짠다.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신다. 책도 보고 넷플릭스도 본다. 지금은 글쓰기도 함께 하는 분명한 나의 자리이다.


가끔은 식탁을 들어 밀며 창가로 옮겼다 다시 주방으로 옮겼다 혹은 티브이가 보이는 거실 벽면으로 옮겼다 내 기분에 따라 내 자리를 옮긴다.

나중에 혹시나 더 큰집으로 이사를 가도 저 식탁만큼은 간직하고 싶다.

영원한 나의 자리가 되어  오늘을 기록하고 매일을 살아가는 나와 늘 함께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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