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제를 떠 올리고 나에게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조건 내 가족이지!" 오로지 가족만이 떠올랐다.
요즘 부쩍 귀여워진 4살의 두 아이를 마주하며 첫째의 네 살과 둘째의 네 살도 함께 추억한다.
무심코 이런 말을 내뱉는다. "아! 얘네들 없으면 어쩔 뻔했어..."
육아가 힘들다 하면서도 또 이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음으로 즐거워하고 행복해한다. 모순 같지만 결국은 사실이다. 힘든 건 힘든 거고 행복한 건 또 행복한 거다.
4년 전, 두 줄이 선명한 임신 테스트기를 보며 무척 당황스러웠다. 둘이면 딱 좋다며 너스레를 떨어 놓고는 덜컥 셋째를 임신했다는 생각에 나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래... 원래 셋까지도 낳을 생각을 했잖아, 물론 그때는 아이가 없을 때였지만 이렇게 내게 온 축복인데 받아들이자! 둘째까지 다 키워놓고 좀 편해지긴 했지만 또 키우고 나면 좋을 거야!'
그리고 찾아간 병원에서 쌍둥이 임식 소식을 전해 듣고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건강한 심장소리를 들려주며 기쁘게 축하해 주는 의사 선생님은 안중에도 없었다. 나는 진료시간 내내 멍하게 있었다. '쌍둥이'라는 말만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진료가 끝나자마자 남편에게 물었다. "낳을 거야?"
남편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 말을 후회했다. 이미 이 남자는 얼굴 반쯤은 신이 나 있었다.
"당연히 낳아야지! 안 낳을 거야?"라고 되묻는 남편에게 "아니, 그냥 확인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사실 그 질문은 의미가 없었다. 아이를 임신하고 낳지 않을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 단지 내 현실을 걱정하는 질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나도 아닌 신생아 둘, 그리고 아직은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두 아이를 과연 잘 키울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 말이다.
어머님께 전화를 드린 남편은 쌍둥이 임신 소식을 전했고 어머님은 장난치지 말라며 욕을 퍼부으셨다. 그 소리에도 껄껄 웃으며 남편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도 전화기 너머도 들려오는 목소리도 꽤나 기쁘신 듯했다. 그날로 시댁으로 가서 축하를 받았다.
다음 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에게 임식 소식과 함께 쌍둥이라고 하니 대뜸 "시댁에 쌍둥이가 있니?"라고 묻더니 엄마는 깊은 한숨을 쉬셨다. "네가 힘들어서 그렇지! 애들 많으면 좋지, 네가 걱정돼서 그래 네가! 지우 아범은 뭐래? 낳는데? 그래 낳아서 잘 키워. 너는 잘할 수 있어! 근데 너는 괜찮지? 괜찮은 거지?"라며 내 걱정은 한 가득 풀어놓았다.
그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속옷에 피가 비쳤다. 약간 탁하긴 하지만 너무 놀라 남편에게 전화를 했고 급한 마음으로 병원을 찾아갔다. 다행히 아이들에게는 문제가 없었고 안쪽으로 상처가 있어 피가 난 듯하다고 하셨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고는 아이들만 건강하기를 바랐다. 다행히 건강한 모습으로 아이 둘을 출산했다.
물론 조리원 문을 열고 들어 가는 순간부터 나의 걱정은 기다렸다는 듯이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아이 둘을 보는 조리원 생활은 무척 힘들었다. 그건 나뿐이 아니었다. 출근길에 아이 둘을 보내고 이른 퇴근길에 아이 둘을 챙겨 집으로 돌아와 내 몫까지 해 냈어야 했을 남편도 아마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여전히 시부모님께서도 아이들 육아에 동참해 주시고 어느덧 이 시간까지 아이 넷을 키워냈다.
누군가가 아이들을 잘 키웠냐고 묻는 다면 사실 '잘'이라는 말에 대답을 머뭇 거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이 잘 컸네요?"라고 묻는다면 본인들의 타고난 건강으로 이만 큼 잘 커줬다고, 엄마 아빠도 할 수 있는 만큼 키워냈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크게 모자람 없이 잘 커준 아이들에게 참 감사하다.
이제는 사실 나와 내 남편에 건강에 조금 더 신경 써서 살도 조금 빼고 운동도 조금씩 하며 아이들이 커 감에 부담스럽지 않게 내 나이보다는 조금 더 젊게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가져본다.
그 욕심들을 더해 건강하고 밝게 그리고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갈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는 소중한 우리가 있어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