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주방을 정리하다 내 말투에 흠칫 놀랐다.
"숙제 다 했니? 양치해!" 너무나 감정이 없었다. 평소에도 그렇게 말할 때가 있었겠지만 유난히 거슬렸다. 세상에나 저리 귀여운 아이한테 이렇게 강압적이고 딱딱한 말투로 말을 하고 있다니,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나는 빠르게 말투를 고쳤다.
"곧 자야 하는데... 양치를 어서 하고 오면 어떨까?" 최대한 부드럽고 상냥하게 말했다. 얼굴이 굳어 있던 둘째는 나를 바라보며 "네, 엄마!"라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욕실로 후다닥 뛰어 들어갔다.
문제는 나였다. 왜 내 말에 대답을 하기 싫어했는지 왜 그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는지 왜 계속 싫다고 반항하는지,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었다. 내 잘못이었다.
아마도 누군가가 나에게 모질고 딱딱하게 말한다면 하려던 일, 아니 하고 싶었던 일도 타버린 장작처럼 마음이 뭉개져 허공에 잿가루를 풀풀 날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인친님의 피드에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아들! 엄마 좀 나갔다 올게'하는 책이었는데 그 책의 저자와 아들의 대화에서 상냥하지만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고 질문하는 문장들을 꽤 많이 볼 수 있었다. 머리를 쓰고 있다고 표현했지만 따뜻했다. 그 글들을 보며 무심코 '나도 이렇게 말해줬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네!'라며 반성했다.
얼마 전 수업을 마치고 나오시던 학습지 선생님께서 웃으며 이야기하셨다.
"아이들이 참 밝아요! 어디 하나 뾰족하고 날카로운 구석이 없네요. 정말 잘 키우셨어요."라는 말을 건네 셨다. 내심 뿌듯했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요... 많이 부족한걸요!'
네 아이들을 키우며 내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돌이켜 보면 첫째 때는 모르는 게 많아 애걸복걸하는 엄마였다. 모든 게 힘들었고 내 마음처럼 되는 일이 없었다. 내 옆에 있는 애가 아니라 경험해 보지도 상상해 보지도 못한 현실에 당황스러웠던 모양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때의 내 모습은 늘 힘에 부쳐 있었다.
둘째를 키울 때는 첫째 때와 달리 전전긍긍하던 모습은 꽤 많이 사라졌다. 한발 뒤로 물러 선 육아에서 내 마음가짐은 무척 편안했다. 나를 재촉 하지도 답을 찾으려 애쓰지도 않았다. 내 두 눈에 너무나도 예쁜 모습을 하고 있는 아이 둘에게 집중했다. 어려움은 곧 다른 데서 터져 버렸다.
딸이었던 둘째가 그냥 힘들었다. 사실 이 아이도 자기만의 생각이 있겠지, 그걸 몰라주니 속상해하는 건 당연할 테지만 알면서도 이해하지 못했다. 심적으로 나는 너무 어려웠다. 더군다나 둘이 되고 둘이서 싸우는 모습을 매일 보고 있으니 곤욕이었다.
큰아들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어려움, 하나였을 때는 고민해 보지 않았던 현실이 펼쳐졌다. 그때부터 나는 아이들에게 혼을 많이 내고 짜증도 많이 냈던 것 같다. 한 번이 쉽지 안 그래야지 했다가도 결국 재자리를 찾아온 것처럼 다시 그 자리에 난 아이들 앞에 무서운 엄마의 모습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하나를 챙길 때 보다 내 몸은 더 바빠졌으니 내 몸도 조금은 힘들었을 테고 그냥 육아가 힘들다는 생각보다 이 아이를 대하는 상황 하나하나가 힘들다 보니 나는 피곤하고 나는 급했다. 하나만 해결하면 되던 일들이 두 개로 늘어나 아침도 저녁도 모든 게 바빴다. 생각해 보면 딸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생각도 없이 나 스스로에게 불만을 토해내고 있으니 편해진 마음가짐도 온데간데없이 나는 다시 지쳐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이유야 어쨌거나 아이를 혼내고 다그치는 일은 결국 나를 자책하고 더 힘들게 만들었다. 습관처럼 혼내도 다시 습관처럼 후회를 한다.
그래도 난 지금도 노력 중이다. 그래서 더 바쁘다. 아이들을 더 많이 안아주려고 노력하니 내 몸이 바쁘고 사랑한다 말해주고 미안하다는 말해 주려니 내 입이 쉴 날이 없다.
우연히 인스타에 올라온 글을 보았다.
'자신보다 강한 사람에게 짜증을 내는 사람은 없다...... 짜증을 내도 되는 사람도 없다고 믿는 것이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 그럴 수 있다고 너그럽게 받아들일 것.(@take.a.diary)' 이 글을 보는 순간 깨 닳았다. 아이들을 약하다고 생각하니 내가 너무 쉽게 짜증을 낸 건 아닌지, 혹은 내가 너무 너그럽지 못 한 사람이기에 짜증을 낼 수밖에 없는 건지. 짜증 내도 되는 사람은 없는데 말이다.
내 아이들을 존중하고 크게 자라길 바란다.
내가 무섭게 달려들수록 다른 사람들도 쉽게 그래도 되는 것처럼 달려들 거라는 생각을 잊지 않고 오늘도 내 아이들에게 소중하고 따뜻한 마음과 행동을 잊지 않아야겠다.
아직은 많이 부족한 엄마라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