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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주댁민댕씨 Jan 10. 2023

아직도 열정이 넘칠 뿐이야

‘오늘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주말 오후에 혼자 이 영화를 보러 갔는데 슬픈 영화를 대비해 손수건 2장과 함께 맨 앞자리에 앉아 눈물을 한 바가지 흘리고 나왔다.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출구로 나오는데 아줌마로 보이는 건 나뿐이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웅성 거리며 말한다. “미쳤네 왜 이렇게 귀여워? 너무 슬프지 않아? 너 주인공, 죽는 거 알았어?” 그 말이 내 귀를 스치는 순간 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뭐든 자신의 취향이란 게 있지만 12세 관람가의 영화를 보는 성인은 나뿐인 것 같아 조금은 부끄러웠다. 벌게진 눈을 하고는 주차장에 앉아 코를 풀었다. 뻔한데 왜 그리도 슬프던지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가끔 친구들이 말한다. “아직도 소녀 감성이네! 이런 거 좋아하고.” 그 말이 마흔을 훌쩍 넘긴 나에게 욕인가 싶다가도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다. 아직도 그런 풋풋함이 좋아서. 지금도 로맨스를 즐겨본다. 그 안에서 나는 꽤나 설렌다. “그래도 역시 주인공이 너무 멋있지는 않아, 뭔가 좀 부족해! 사진이 더 예쁜 것 같고, 기억 상실증 그리고 주인공의 죽음, 그런데 둘은 너무 사랑해 이건 슬프지 않을 수 없는 내용 하닌가? ” 주변에서 “영화는 어때?”라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답했다. 그걸로 충분했던 어느 날 넷플릭스 속에서 그 영화의 주인공들이 있는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사라진 첫사랑’이라는 드라마 제목과 미치에다 슌스케와 후코모토 리코의 얼굴을 보는 순간 열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를 시작으로 연장선을 만난 느낌이랄까, 나는 당연히 이 둘의 사랑을 기대하고 본 드라마였다. 이 제목의 만화책이 있다는 사실도 드라마를 다 본 뒤에야 알게 되었다.


드라마는 10회에 막이 내렸고 나는 9회부터 펑펑 울기 시작했다. 훌쩍거리고 있는 나에게 아들이 다가와 “엄마 울어?”라고 묻는다. 창피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렇게 드라마를 보면서 운다. 내 생각과 달리 이건 동성애 이야기이지만 남자와의 사랑을 만들어가고 완성하는 장면인데 이 둘의 캐미가 전혀 징그럽지 않다. 그 어떤 로맨스만큼이나 사랑스럽다. 너무 예쁜 미치에다 슌스케와 메구로 렌의 장면들을 곱씹어 보며 드라마 ost까지 찾아보았다. 귀여웠던 슌스케의 뮤직비디오를 찾아보자마자 물을 뿜었다. 의상도 춤도 웃음이 나왔다. 이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촌스러움과 유치함이 그저 “귀엽네! 역시 귀여워!”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었다. 21살의 슌스케는 그저 귀여운 조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렌을 본 이후로는 느낌이 좀 달랐다. 꽤 괜찮은 퀄리티의 음악과 춤을 보고 있자니 궁금해졌다. ’쟈니스 답지 않은데?‘ 그게 내 생각이었다. 일본 남성 그룹 ‘snow man’의 음악과 메구로 렌의 작품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문득 처음 일본 배우를 좋아했던 그때가 떠올랐다. 벌써 20년 전이다. ‘사토라레’라는 영화와 함께 ‘안도 마사노부’라는 배우를 좋아했었다. 그때 한 참 일본 드라마를 보면서 ‘에이타’도 좋아하게 되었지만 그냥 누군가 일본 배우 중에 누가 좋아라고 묻는다면 답할 수 있는 배우가 그 둘이었다. 우연히 보게 되면 반거워 할 뿐 일부러 무언가를 찾아보지는 않았다. 일드를 다운로드하여 아이팟에 담아 두고 그 작은 화면으로 드라마를 볼 수 있다며 좋아하던 나의 20대가 문득 떠오르는 요즘이다. 세상이 좋아져 뭐든 찾아볼 수 있음이 신기할 뿐이다. 메구로 렌이 좋아 드라마 ‘사일런트’ 첫 화를 결재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들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 조금은 촌스럽다고 느낀 노래들이 귀에 익어 즐거워졌다.


곧 떠나는 일본 여행에서 내가 다른 건 몰라도 ‘snow man’ 앨범하나는 꼭 사들고 오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도 그런 것이 국내에서 이용하는 온라인 음악서비스 앱에서는 이들의 음악을 찾을 수가 없었다. 유튜브로 듣자니 중간중간 나오는 광고에 건너뛰기를 하느라 하는 일마다 멈추고 있는 나를 위해 이들의 앨범을 꼭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결론은 사 오지 못했다. 그래도 이들에게 빠져 연말에 일본을 간다는 것 자체가 흥분되는 일이었다. 여행 첫날 숙소에 오자마자 NHK 채널로 고정해 두었다. 한국에서는 오늘 ‘홍백가합전’에 ‘아이브’와 ‘르세라핌’이 출연한다는 소식에 떠들썩한 것 같은데 나는 ‘나니와 단시’ 그리고 ‘snow man’을 보기 위해 준비해 둔 것이었다. 오프닝이 시작되었고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흥분하는 나를 보고 “언제 이런 걸 좋아했어?”라고 엄마는 묻는다.  또 너무 티 내는 것 같아 부끄럽지만 숨길 수가 없다. 엄마와 편의점에 들를 때도 나는 잡지부터  찾아본다. 여러 개의 잡지들의 표지마다 슌스케와 렌의 얼굴들이 보인다. 살까 말까를 수백 번 고민했지만 잡지까지 집에 두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아 읽다가 내려놓았다. 역시 예쁜 쓰레기라며.


한국에 돌아와 여전히 나는 ‘snow man’의 음악을 듣는다. 틈틈이 예능 속 영상들도 찾아본다. 무슨 말인지 몰라 자막을 읽지 않으면 왜 웃고 우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리고 자꾸 사진을 찾아본다. 보고 보고 또 보고 넷플릭스에서 골동품 같은 영상을 발견했다. ‘타키자와 가부키 제로 2020 더 무비’를 보게 되었는데 보는 내내 이게 뭔가 싶었다. 단지 snow man 멤버들이 나오는 영상이어서 찾아보았다. 지금은 ‘라이드 온 타임: 그들의 백스테이지’를 보고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연예인들도 마찬 가지겠지만 수많은 노력과 고난으로 데뷔라는 무대를 완성해 간다. 보다 보니 이런 다큐는 왜 보나 싶었던 마음이 사그라든다. ‘나나와 단시’도 ‘snow man’도 노력 없는 결과는 없는 것 같다. 결국 또 그 마음이 나를 움직여 일본에서 사 오지 못한 그들의 앨범을 결국 주문했다. 이 주나 기다려야 하는 게 조금 속상할 뿐이다.


최근에 <엄마의 자존감 공부>를 읽고 있는데 이런 문장을 읽게 되었다. ‘좋아하는 드라마가 나오면 TV에 빨려 들어갈 것처럼 초집중하는 순간도 있다. 이런 게 바로 마음의 온도가 올라가는 거다. 마음의 온도를 올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열정도 얼마든지 낼 수 있다.‘ 이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유튜브 영상 속에서 메구로 렌을 찾고 인스타그램 안에서 그의 사진을 쉴세 없이 찾아보고 드라마를 결재하고 앨범을 주문하는 내 모습을 보며 내 마음의 온도가 올라가고 있음을 충분히 느꼈다. 끓어오르는 만큼 또 언젠가는 이 온도가 내려가겠지만 아직은 나에게 이만큼의 열정이 넘쳐 나고 있다는 생각에 ’나 아직 꽤 젊구나!‘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누군가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이 마음을 꽤 열심히 내 열정이 다 하는 날까지 표현하려 한다. 그리고 이 참에 일어공부를 조금 더 해볼까 한다. 아 모든 것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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