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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주댁민댕씨 Jan 18. 2023

나의 23년은 특별할 줄 알았다

새해가 시작되기 전 많은 생각을 했었다. 과연 나는 어떻게 23년을 나를 위해 노력할 수 있을지 고민을 했었더랬다. 아직 끝나지 않았던 22년 끄트머리에서 하나 둘 준비를 시작했다. 예전에 썼던 ‘모닝 페이지’ 용도의 노트 한 권과 가계부 한 권, 다이어리 2권 그리고 질문 일기장을 준비하며 돌아오는 새해에는 ‘기록’에 집중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22년 나름 뿌듯한 한 해를 보냈던 덕분에 욕심이 났다. 그리고 문득 열흘의 시간을 돌아보니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나를 보았다. 예전에 다잡아 놓았던 행동들마저 모두 풀어져 계란말이처럼 돌돌 말아 웅크리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일본에서 보내는 새해도 나에겐 큰 희망이 되었다. 뭔가 새로움을 아니면 더 큰 풍요로움을 나 나름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새해 첫날, 6시에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홍백가합전’을 보고 보신각을 대신해 일본의 새해 종을 울리는 풍경들을 TV 너머로 보고 나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12시가 넘도록 버티고 잠이 들어 다음 날 온천을 하기 위해 일어난 시간이 딱 그 시간이었다. 그렇게 1월 1일도 난 그저 장소만 바뀌었지 오히려 여행이라는 핑계를 삼아 전보다 느긋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즐기며 별다른 것 없는 그런 하루를 보냈다.


여행을 갔다 오면 마음이 다 잡힐 줄 알았으나 돌아오자마자 나는 방학이라는 시간을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시작했다. 오히려 그렇게 새해를 보내고 와서인지 마음은 조급한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느긋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 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 <어른의 시간>이라는 책 속에서 이런 문장을 보게 되었다. ‘나는 마흔다섯 무렵에서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나를 찾았다.’ 그 문장은 조급해진 내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되었다. ‘내 마음이 꽤 조급했네, 느긋해져 보자.’ 요즘 최애의 노래 두 곡을 재생하고 미뤄둔 책들을 꺼내 읽었다.


깨끗하게 비워진 가계부를 꺼내 보고는 체크카드 사용한 금액과 맞춰보며 정리를 했다. 새해에는 좀 더 아껴보겠다고 다짐했던 것들은 모두 사라졌다. 생각 없이 질러댄 돈들이 눈이 보였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라며 계획 없이 사들인 CD들의 결과물을 보고 있었다. “그래 달력도 안 샀고, 잡지도 안 샀어. 잘했다.” 위로 아닌 위로였을까, 아니면 진심으로 대견했던 걸까, 내 입 밖으로 꺼낸 말들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정리를 하다 보니 마음이 더 어수선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질문 일기를 펴고 보니 단 두 장만 채워져 있다. “나 뭐 했지?” 결국 한창을 더 채워본다. 일기장을 꺼냈다. 꾸준히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던 작년의 나는 없고 중간중간 비워진 일기장이 나를 바라본다.


일기장 끝에 하고 싶은 것,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써보았다. 그러고는 일기장 끝자락에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나의 시간을 정리 좀 해보자!’라고. 문제는 시간이 아니라 내 마음인데, 내 마음도 전혀 가늠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어수선한 마음속으로 다시 음악을 구겨 넣는다. 나름 진정이 되리라고 생각하고 흘리는 음악인데 이 두 음악에 흥분하고 있다. 요쿠시카의 ‘좌우맹’과 오피셜 히게 단디즘의 subtitle’을 듣고 있으면 책과 영화 드라마의 모습들이 떠올라 흥분을 감출 수가 없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아 고민 끝에 일어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마음먹고 수업료를 결제했다.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그래도 일단 해보자고’ 나에게 속삭였다.


‘사람은 1년 365일 동안 그렇게 중간중간 성장해야지, 1월 1일에 한꺼번에 클 수가 없다.’라는 문장을 <엄마의 자존감 공부> 책 속에서 발견하자마자 마음속에 있던 일어 공부를 실천해 보겠다 마음먹었다. 1월 1일부터 무언가를 대단히 힘을 쏟겠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조금이나마 가벼워진 기분이다. 뭐 대단한 것을 바란 것도 아닌데 내가 너무 내 마음을 괴롭히고 있었던 건 아닌지, 또 쉽게 포기할 뻔했지만 언제나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꾸준히 나를 이끌 수 있을 거라고 소심하게 확신해 본다.


사라 님이 말한다 “덕질하고 있었잖아요.” 그랬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미뤄두고 나는 덕질 중이었다. 웃는 게 예뻐서 사진을 찾아보고 또 우는 게 예뻐서 드라마를 찾아보고 예능을 보며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내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이 열정도 꽤 큰 힘을 쏟고 있는 일인데도 나는 이 상황을 부정하고 있었나 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려보낸 시간으로. 나의 덕질은 좀 지칠 때까지 계속해 보려 한다. 그리고 그 열정이 시들해질 때 즈음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차곡차곡 밀어 넣어 내 열정의 온도를 꾸준히 올려가며 살아야겠다고 오늘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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