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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주댁민댕씨 Aug 15. 2021

사이드 프로젝트?


얼마 전에 빌려서 읽게 된 책이 하나 있다.

'나의 첫 사이드 프로젝트'라는 책이었는데 읽다 보니 나의 과거와 현재를 많이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특히 현재의 글쓰기 모임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각났다.


'나의 사이드 프로젝트란 무엇이 있었을까?'


어릴 적 엄마는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무척 가난했다고 했다.

그런 엄마는 어린 시절 일찍부터 일을 시작했고 미싱을 열심히 배웠다고 했다.

그렇게 엄마는 남대문에 작은 매장을 꾸리며 디자인도 하고 판매도 하고 가족들과 함께 적당한

집에 살면서 꾸려온 삶이 아주 행복하다고 했었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내가 무엇을 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잘 없었던 것 같다.

대학을 꼭 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그렇다고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 무어냐는 질문에

딱히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막연했다. 그냥 나는 그림 그리기도 좋아하고 옷을 좋아하니까 엄마 하는 일을

따라가 볼까 하는 마음으로 디자인 학원에 다니기로 했다.


수료 후 몇 년 동안 남대문과 동대문에서 디자이너로 열심히 일해왔었다.

그렇게 직장생활을 하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순필 언니를 만났다. 그녀는 나의 멘토 같은 존재였다.

그녀를 만나면서 나의 생각은 조금 달라졌다.


나와 같이 디자이너 일을 하지만 모든 게 뛰어났던 그 언니를 더욱 특별하게 마주 한 것은

이상봉 선생님과 인사하는 언니를 만났을 때였다. 학교 다닐 때 이상봉 선생님 밑에서 공부를 하고

또 막내 디자이너 생활도 함께 했었다는 언니는 무척 대단하게 느껴졌었다.


나 편하자고 대학공부 포기하고 학원으로 달려왔던 모습을 되돌아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다시 학교를 가보겠다는 마음으로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직장생활을 어느 정도 하면

대학에 지원할 수 있다는 특별전형을 알게 되었지만 난 또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해 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리 늦은 때도 아니었는데 친구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는 그때

지금 학교에 들어가 졸업을 하고 나면 꽤나 뒤쳐져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나를 위로하고 편한 일상을

받아들이기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자극이 되었어도 크게 변하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금세 익숙해지고 괜찮았다.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일은 그만두었지만 나 나름의 육아와 함께 주부로서의 삶을 즐겼다.

나의 일상은 조금 변화하였지만 돌이켜보면 항상 그 자리였던 것 같다.


그냥 그 자리에서 순수하게 그 자체만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나름 열심히 살 줄만 알았던 것이다.


결혼 후 옆에서 조금씩 부추겨 주신건 어머님이셨다.


둘째를 출산 후 가끔 와서 봐주시곤 하셨는데 그때마다 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어머님이 봐줄 때

해보는 건 어떠냐고 물어보셨다.

생각해보면 나의 사이드 프로젝트는 아마 그때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처음으로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플라워 클래스였다. 우연히 찾아보게 된 꽃 수업의 사진들을 보며

그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숙영 쌤과 인연이 되어 방학동에서 길음까지 수업을 다녔었다.

선생님 집으로 수업하러 가는 길은 정말로 행복했었다. 함께 내어주시는 티타임까지 너무 완벽했다.

아이와 떨어져 2시간 정도의 내 시간을 보내며 꽃놀이도 하고 더없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리 오래는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 갈 수 없는 상황도 되고 선생님 역시 다른 동네에 예쁜 꽃집

오픈을 준비하시면서 나의 꽃놀이는 점점 뜸해졌다.

그래도 그때 잘 기록하고 공부했다면 어쩌면 지금쯤 동네 꽃집 사장님이 되어있었으려나?


그리고 두 번째로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 했던 것이 라탄이었다.

우연히 찾아본 라탄 공예는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그때는 근처에 공방도 따로 없고 인스타로 사진을

매일같이 찾아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진을 참으로 잘 찍으셨던 은아님의 인스타 덕분에

관심을 갖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 사진과 함께 어우러진 인스타 피드를 매일 찾아보았으니...

우연히 은희와 부산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때마침 은아님이 원데이 클래스 모집 공지가 올라왔다.

어쩜 딱 여행 가는 날 수업이 있었다. 급하게 은희에게 연락해 함께 수업을 들어보자고 이야기했다.

은희도 재미있겠다며 좋아해 주는 덕분에 수업을 신청하고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부산역에서

샐러드 빵과 국밥을 챙겨 먹고는 수업을 하러 택시를 타고 공방까지 달려갔던 기억이 난다.

생각보다 라탄 수업은 너무 즐거웠다.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노동이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정말 서울에서 매주라도 수업하러 달려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다!

그러나 서울로 돌아온 나는 셋째를 임신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도 쌍둥이!

설마 했던 일을 현실로 마주하며 라탄을 사진으로만 접하다 결국 은아님께 연락을 했다.

나무실이라도 사고 싶었다. 지금은 라탄 공예 준비물을 종류별로 쉽게 살 수 있는 곳이 많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어디서 사야 할지 검색해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 이후로 집에서 사부작 거릴 줄 알았는데 나무실만 집에 받아두고는 두 손 놓고 있었다.

그러다 은희와 을지로에서 밥은 먹기로 약속한 날 근처에 라탄 공방을 찾아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는 은아님께 주문했던 나무실을 조금씩 풀어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사부작 거리고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 임신을 하지 않았더라면 정말 난 라탄에 조금 더 진심일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랬다면 지금쯤 동네에서 라탄 공방을 운영하고 있었으려나?


라탄은 지금도 가끔은 한다. 동네에 예쁜 공방이 있어 가끔 원데이 수업도 들을 수 있다.

혼자서 만들기도 어제나 준비는 되어있다. 작정하기가 어렵지 작정하고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덤비는 게 라탄이다.


양주로 이사 온 이후로는 동네 엄마들과 모여 유튜브 영상을 보며 함께 라탄 만들기도 했다.

함께 만들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선물도 주고 나의 취미를 공유했다.

지금도 새로 산 나무실 박스가 팬트리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잠시 놓은 손을 다시 작정하기가

어려워 지금은 꽤 오래 쉬고 있었다.


양주에 이사와 시게타 루기(しけたるき)언니를 만났다. 루기라는 이름이 생소했지만 딱히

물어보지도 않았고 한국어를 너무 잘해서 일본 사람이라는 사실은 조금 늦게 알게 되었다.

이 언니는 한국어도 잘하고 요리도 잘한다. 한국음식을 여기 있는 엄마들보다도 잘한다.

이 언니는 요리도 잘 하지만 베이킹도 잘한다. 몇 번 어깨너머로 보다 보니 베이킹에 또 관심이 생겨

머핀과 컵 카스테라 그리고 생크림이 들어간 롤케이크까지 언니에게 배워보게 되었다.

오븐은 없지만 에어프라이어로 빵을 만들었다. 나도 조금씩 찾아보고 쿠키나 무반죽 빵 정도는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한동안 정말 빵에 미쳐 열심히 만들다가 결국 에어프라이어가 사망했다.

관심을 급속도로 갖었지만 오븐을 구매하지 못하고 나의 열정은 식어버렸다.

언니에게 빵 만들기 뿐 아니라 장아찌 만들기도 배워 지금까지도 쭉 만들고 있다.

그 외에 궁금한 요리는 언니에게 묻곤 한다.


언니를 만나 오랫동안 손 놓고 있던 일어 공부를 다시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사보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나 너무 금방 포기해 버렸다.

도예공방도 다녀보고 가죽공방도 다녀봤는데 재미는 있지만 꽤나 많은 집중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라 또 금세 그만두기도 했다.


봄에는 동네 엄마들과 등산을 다니기도 했다. 이건 사실 너무 재미있어 가을부터 다시 시작할 계획이다.

방학과 함께 멈춰버린 등산은 아직 내 마음속에서 식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

'오르미'라는 이름과 함께 가을에도 쭉 함께하길 바란다.


뭐든 길게 해내지를 못해서 그렇지 순간의 열정은 김연아 못지않은데 증명할 방법이 없다.

배우는 것도 배우는 거지만 지금까지 미니멀 라이프를 5년 정도 유지해 오는 걸 보면

또 가끔이라도 꺼내는 라탄 장비들을 보며 좋아하면 언제든 꺼낼 수 있는 이것들이 나만의

사이드 프로젝트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지금은 또 글쓰기 모임을 함께 하면서 글쓰기나 가끔 읽는 책에 마음을 두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모닝 루틴을 만들어 가는 나, 그 모든 것이 쌓여 나의 사이드 프로젝트가 되는 건

아닌지, 2주 동안 방학을 보내고 오랜만에 글쓰기 모임을 함께 했다.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역시나 글을 써 내려가는 일이 오랜만이라 그런지 조금 더 힘들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익숙한 얼굴에 안부를 묻고 웃어줄 수 있는 모습이 되어있다는 것이었다.

처음 글쓰기의 시작을 알리던 글과 함께 몇 주를 함께 하며 그래도 글쓰기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는 걸 2주의 쉼을 갖고 서야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요즘은 함께 글을 쓰고 소통하는 시간이 지금은 무척 즐겁다.

 모임을 사랑한다. 나의 지구력 앞에서는 작아지는 나지만  관계 오래도록 지키고 싶다.

이 모든 것이 쌓여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의 저자이신 김원희 할머니처럼 멋지게 살며 글을 쓰고 싶다.


이것이 지금 나의 새로운 사이드 프로젝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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