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신생아와 함께 한 첫달 육아일기

엄마가 되고 보니 나는 준비한게 하나도 없었다.

by 글쓰는숑숑


눈 감고 일어나니 엄마가 되었다.



출산의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질식분만과 제왕절개.


나는 내가 왠지 그냥 질식분만을 하리라고 생각했다.

엄마도 나를 포함해 동생 2명을 그렇게 낳기도 했고 왠지 엄마를 닮아 골반이 넓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만삭 때 내진을 해본 결과 담당 원장님께서는 속골반은 좁고 아이는 크다며 제왕절개를 권유하셨고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그 방법이 좋겠다고 전문가가 의견을 주셨기에 나와 남편은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렇게 35년 평생, 수술은 한번도 받아본적이 없던 내가 엄마가 되기 위해 수술을 받았다.


수술 전날은 엄청 떨렸지만, 그 때와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어쨌든 아가는 뱃속에서 꺼내야 했으니까.


남편과 함께 임신했지만, 임신기간 내내 임신으로 인한 괴로움을 겪는건 나였던 것처럼

출산을 할 때도 그는 함께 다독여주기는 했지만 결국 수술대에 올라서야 하는건 나였다.


하반신마취 후 아가를 본 뒤에 후처치때는 수면마취로 재워주신다고 하셨는데

생각보다 하반신 마취 후 아가를 보기까지가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사실 11분만에 아가는 나왔지만, 맨 정신으로 수술대에 누워서 아기가 나오길 기다리는 11분은 꽤 길게 느껴졌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고, 아기 얼굴을 확인한 뒤 곧바로 잠이 들었다.

깼을 땐 수술실에서 후처치가 거의 마무리가 된 상황이었고 처치실로 옮겨져서는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기를 내가 낳은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크게 감흥이 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엄청 겁났던 수술이 끝났다는 사실이 먼저 기뻤고 아기는 신기했다.


정말로 이 생명체가 내 뱃속에 있었던 생명체였다고?

지금도 정확히 믿기지는 않지만 그 때는 더더욱 잘 실감이 안났다.


이후 병실로 옮겨지고, 수술부위는 아팠고 밑에서는 오로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고

고개를 들면 안된다고 해서 베개도 8시간 이후부터 벨 수 있었고 몸을 움직이기 불편한 상태로 하루가 지나갔다.


둘째날은 소변줄을 빼고 걷기 연습 후 아가를 만나러 갈 수 있다고 했는데 생전 처음 껴본 소변줄은 뺄때도 몹시 불편했고, 천천히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남편이 찍어다주는 사진과 영상으로만 아이를 봤었는데 오후에 처음으로 신생아실에서 아기를 볼 수 있었다.


제왕절개 후 겪는 고통은 당연히 아프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 기준에서는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훗배앓이가 더 아팠던 느낌? 아이를 낳는데 어떻게 이 정도도 안 아프겠는가라는 생각이면 참을만했던 것 같다.


다만, 제왕절개는 후불제라고 그러던데 실제로 수술이 끝나고 회복까지 3-4일 정도 아픈 정도가 끝이 아니었다. 지금 수술 후 한달 정도의 기간이 끝났지만 여전히 복부 일부 부분은 감각이 없다. 완전히 회복되는데까지 최대 6개월 정도까지도 걸린다고 한다. 게다가 복직근 부분도 손상되어서 복부 근육을 다시 만드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렇게 생각보다는 쉽게, 그러나 이후 겪어야 할 무게는 무겁게 나는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처음 본 소감은 신기했다.


남들은 눈물도 흘린다는데, 사실 나는 눈물을 흘릴 정도는 아니었고 그냥 신기하고 귀엽고 못생겼다라는 정도?


산부인과에서는 하루에 2번 아기를 10분씩만 만날 수 있었고, 그 외 시간에는 내 몸 회복에 신경을 쓰느라

정작 산부인과에서는 아이를 낳았다는 마음이 잘 들지 않았다.


다만, 3일째에 오는 모유수유콜을 받고 가서 모유수유를 시도하면서 아기를 처음 안아보는데

아기는 너무 작아서 안기도 조심스러웠고, 나오지도 않는 젖을 물겠다고 낑낑대는 아기가 귀여웠다.





그리고 눈물의 산후조리원 2주


제왕절개였기 때문에 4박 5일이었던 입원기간을 지나 산후조리원에 입소했다.

나는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이 한 건물에 있었기 때문에 이제 태어난지 5일된 아가를 데리고 조리원으로 내가 갈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 전에 이미 아기가 황달이 좀 심해서 광선치료를 받자고 했기 때문에 첫날은 나만 조리원으로 올라갔다.


조리원 모자동실시간은 하루에 두번.

아침에 한번, 저녁때 한번이었는데 남들은 저녁 때 아기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데

첫 날 저녁 때 나는 아기가 병원에 있었기 때문에 함께 시간을 보내질 못했다.


젖을 물리고 난 이후에는 조금씩 모유가 생성이 되고 있었고 신생아실로 전해드리면

유축모유를 아기에게 주신다고 해서 열심히 유축을 해서 신생아실에 전해드렸다.


신생아실에 유축된 모유를 젖병에 담아 전해드리고 올라오면서 첫 울컥.

다른 사람들은 모유수유를 직접 하기도 하고, 모자동실 시간에 같이 시간도 보낸다는데

나는 저 날은 아기를 만나지도 못하고 광선치료를 받느라 통 안에 들어있는 아기만 봤고

유축모유만 전해주고 오는 것이 괜스레 속상해서 눈물을 쏟았다.


조리원 2주간 거의 함께 있었던 남편은 내 눈물에 당혹스러워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잘 달래주었다.


그러나 저 날이 시작이었다.

조리원에서는 거의 14일 중 10일 정도는 눈물을 쏟았는데 매번 참 이유도 다양했다.


처음에는 이 작은 생명체를 내가 어떻게 키울 수 있지 하는 막막한 감정에

어떤 날은 이제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건가, 이제 이 아기의 엄마로만 살아야 하는건가 라는 생각에 서글퍼지기도 했고

모유수유를 하고 온 날은 아기가 젖을 물지 않아서 속상했고

젖을 물다가 잠든 아가를 보면 내가 젖이 부족해서 그런가 싶어서 작아져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머리로는 호르몬 변화로 인한 어쩔 수 없는 감정의 변동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컥하는 순간은 계속 되었다.


다들 산후조리원이 천국이라는데, 그것은 앞에 전제가 필요했던 것 같다.

'앞으로 펼쳐질 세계에 비하면' 천국.


산후조리원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지만 꽤나 조리원에 있을 떄 엄마들은 바쁘다.

일단 출산후 붓기를 뺴기 위한 마사지를 거의 대부분 하기 때문에 1일 1회 마사지가 있는 경우가 많고, 보통 1시간 30분~2시간 정도의 마사지 타임이 있다.


마사지를 받고 오면 모유수유콜이 오고, 모유수유를 하러 간다. 대게 아기들도 젖 빠는게 서툴기 때문에 먹다 자다, 먹다 자다를 반복하므로 다녀오면 30분-40분이 흘러간다. 다녀와서는 젖양을 늘리기 위해서 아기가 미처 먹지 못한 남은 양을 유축한다. 유축하고 나면 밥 먹을 시간이다. 밥 먹고 나서 조금 잘라 치면 다시 모유수유콜이 오고 다녀와서 유축하고 나면 간식 타임이다. 그러면 간식 먹고 나서 다시 수유-유축의 반복.


즉, 모유수유를 하지 않는 산모들은 여유있을 수 있지만 대개는 초유라고 출산 후 약 2주간 나오는 모유는 먹이고 싶어하므로 대부분의 산모들은 이와 비슷한 스케줄로 흘러간다.


그놈의 모유수유

그렇게 조리원에서의 메인이 '모유수유'이므로 참 많은 엄마들이 이 모유수유 때문에 울고 웃는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나는 조리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젖이 나오면 모유를 먹이고 안나오면 분유 먹이지 뭐- 라는 단순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모유가 좋다고는 하지만 분유도 뭐 나쁘지 않겠지! 아이를 출산하는 과정에서 제왕vs질식 중 무슨 방법이 좋을까를 고민해봤는데 결국 내 뜻대로 되지 않았기에, 이 역시 아이가 물면 모유수유가 가능하지만 아이가 싫어하면 모유수유는 못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그냥 어렵지 않게 생각하고 들어갔다.


일단 혼합으로 해두었기 때문에 조리원에서는 모유수유 콜을 주셨고, 가서 모유수유를 하는 수 많은 산모들을 보면 나 역시 모유수유를 잘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유를 할 때는 우리 애기만 먹다가 자는 것 같고, 물지 않고 배고프다고 울면 어찌나 진땀이 나던지. 능숙하게 먹이는 다른 산모들이 너무 부러웠다. 내 가슴 모양이 아이가 물기에 적합하지 않아서 힘든건가, 양이 작아서 먹다가 자는 건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특히나 아이를 안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초보엄마이기에 왼쪽에서 물리다가 오른쪽으로 옮길때만 해도 낑낑대거나 그것도 불안해서 직원분의 도움을 받아야 했는데 그것도 미숙한 엄마인게 티가 나는 것 같아서 속상했다.


그렇게 낑낑 30분-40분을 수유를 하고 방으로 돌아와서는 이번에는 아기가 못 빤 젖을 짜내는 유축을 하게 된다. 젖이 더 많이 돌라고 유축하는 것도 있고, 아기에게 모유를 또 먹이고 싶은 마음에 유축을 하기도 했다. 물론 더러는 젖몸살이 올까봐 너무 아파서 짜낸다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 같은 경우는 양이 많지 않아서인가 너무 아파서 짜내는 경우는 아니었다.


그렇게 유축해서 나온 모유를 젖병에 담아 조리원 내 모든 산모들의 유축젖병이 있는 냉장고에 넣어두게 되는데 그러면 자연스럽게 양이 많이 나온 다른 산모들이랑 비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내 모유는 왜 이렇게 양이 적은건지. 그러면 두고 나오면서도 우울하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모유의 양을 늘리기 위해서는 새벽녘에 유축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호르몬 분비가 활성화되는게 새벽이라나-


그러나 나는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 11시 30분-12시쯤 마지막 모유수유콜을 받고 방에 와서 유축을 하고는 그 때부터 아침 6시 목욕 후 수유콜이 올 때까지 나름 푹(?) 잤다. 다른 산모들은 중간에 새벽녘에 한번씩 유축을 더 했다고 한다. 난 전혀 몰랐다.. 모유수유에 무지했기 때문일수도 있고- 아프지 않아서일수도 있고-

어쨌든 그래서인지, 아니면 선천적인 체질의 문제인지 양은 조리원을 나오는 순간까지도 많이 늘지 않았다.


중반부까지는 열심히 수유콜을 받으러 가다가, 가도 물지 않고 자는 애기를 보고 오면 속상하기도 하고 뒤로 갈수록 분유수유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후반부로 갈수록 유축해서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남편과 조리원생활을 쭉 같이 했는데 남편은 모유 안나오면 분유 주면 되지, 뭘 그렇게 신경쓰냐고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그래도 속상한 마음은 어쩔수 없었다.


이 모유수유의 어려움은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금방 끝났다. 비교대상이 있지도 않고, 내가 필요할때마다 분유를 타서 먹일 수 있기 때문에 구욷이 모유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고 초유도 이미 끝난 시점이라고 생각해서 였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은 거의 분유수유 99%로 하고 있다. 집에 와서 유축을 좀 하고 있기는 하지만, 유축된 모유를 중탕해서 데우는 번거로움이 크기도 하고 유축깔때기에 자꾸 먼지가 끼는 것 같아서 그냥 깨끗이 소독된 젖병에 분유를 주는게 낫겠다 싶어서이다. (물론 처음에는 유축모유를 버리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났다. 직수해서 주면 좋으련만 싶기도 하고, 제대로 못 주는 것 같아서 속상하기도 하고.. 뭐 다양한 감정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집에 와서 알레르기로 인한 기침이 자꾸 생겨서 결국 약을 먹게 되었고, 약을 먹어야 하니 자연스레 모유수유는 중단.


모유가 가장 좋다는 말도 있고, 면역력이 강해진다는 말도 있지만 뭐 어쩌겠는가 라는 마인드가 생겼지만 주변에 아이를 낳으러 가는 친구가 있고 모유수유를 생각한다면 미리 가슴마사지도 받고, 공부도 해 가라는 조언은 해주고 싶다. 아쉬움이 남지 않으려면 말이다.


찐 육아의 시작


산후조리원에서 2주를 지내는 동안 아기를 보기는 했지만,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다. 오전, 오후 두번의 모자동실 시간이 기본이었고 중간중간 모유수유를 하러 가서 보는 정도?


모자동실은 기본이 1시간, 1시간 30분정도였다. 물론 산모가 원한다면 더 오랫동안 아기를 데리고 있을 수 있지만 그마저도 마사지 시간이 겹치면 오래 데리고 있을 수는 없었고, 함께 있는 동안 아기는 주로 잤다. 어쩌다 깨어서 운다면 초보 엄마, 아빠는 당황하기 일쑤였고 결국 신생아실로 이동했다.


2주 후반기에 다가갈수록 집에 가서 이 아기를 어떻게 보살필 수 있으려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지만 걱정을 한다고 시간이 안 가는건 아니니까.


시간이 흘러 13박 14일의 마지막날이 되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은 전날부터 너무 긴장했다.


일단, 이 작고 귀여운 생명체를 데리고 집으로 어떻게 돌아가나.

그래도 집에는 가야 하니까.


조리원에서는 바구니 카시트가 아닌 이상에는 보통 배냇저고리에 속싸개, 겉싸개로 싸서 아기를 주시지만 아기가 카시트에 타려면 결국은 겉싸개, 속싸개 모두 해체해야 한다. 배냇저고리만 입히면 날이 너무 추울 것 같아서 결국 챙겨온 우주복을 입혀서 데리고 나왔다.


어쨌든 아기를 예뻐해주신 분들꼐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엘리베이터를 탄 순간부터 오롯이 이 아이에 대한 책임과 보호는 나와 남편에게 달려 있었다.


일단 카시트에 아기를 태우는 것부터 난관. 깨지 않게 하려고 몹시 애썼지만 속싸개와 겉싸개를 벗기는 과정에서 이미 깨버렸고..! 카시트에 처음 태운 뒤 최대한 고정하려고 천기저귀와 손수건등으로 아직 작은 아기의 머리와 카시트 사이에 빈 공간을 채웠다.


그리고 최대한 조심조심 집으로 가는 길.


이미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길부터 서연이는 잠에서 깼고 울기 시작했다. 운전하는 남편이 당황할까봐 괜찮다고 천천히 가라고 했지만 이미 마음속은 몹시 조급했다.


10분정도 걸리는 그 길이 어찌나 멀게 느껴지던지.

아기는 울었지만 내가 안고 달랠 수도 없었고 그저 카시트에 있는 아기를 다독거릴 뿐이었다.


집에 도착해서는 속싸개를 다시 쌀 만한 공간도, 정신도 없었기에 겉싸개로 아기를 감싸고 집으로 올라갔다.


조리원에서 내내 남편이 함께 있었기에 아기를 맞이할 준비는 완벽히 되지는 않았었다.


계속 울던 아기이기에 기저귀를 한번 보려고 했는데, 쿠팡에서 시킨 기저귀가 오기는 했지만 아직 뜯어두지도 않은 상황. 다급하게 한명은 기저귀를 준비하고 한명은 아기를 보고 있고.


겨우 기저귀를 갈았는데도 계속 울어대는 아기에게 맘마를 주려고 했으나 분유포트는 100도까지 끓은 뒤 다시 식혀야 하므로 시간이 걸렸고, 급한대로 일단 모유수유 직수로 아기 달래기 시도.


남편은 남편대로 아파트 입구 주차장이 비어있지 않아서, 임시로 차를 대두었으므로 차를 다시 대고 오고 싶어서 마음이 다급했고 나는 나만 혼자 아기랑 남겨지는게 불안했다.


그렇게 돌아온 첫날 첫 순간부터 아주 멘붕의 순간들이었다.


응가를 하고 씻기는 것도 미숙하고, 기저귀 가는 것도, 우는 아기를 달래는 것도 모든 것이 미숙한 초보 엄빠는 첫날부터 땀이 주르륵.


이것이 찐 육아의 시작이구나 싶었다.


너무 작고, 소중한 너


첫날보다는 둘째날이, 둘째날보다는 셋째날이 보살피는게 나을거라는 믿음을 갖고 하루하루를 버텨냈고 실제로 나아지고 있기는 했다.


조리원에서는 순둥순둥한 아가가 집에만 오니 울기 시작했다는 말도 있었지만, 서연이는 조리원에서도 그다지 순둥순둥한 아가는 아니었고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다행히도 새벽녘에 많이 찡찡대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11시, 12시 쯤 수유를 하고 나서는 새벽에 일어나지 않고 계속 잠을 자는 아기였다. 조리원에서도 자느라 일어나질 않아서 억지로 깨워서 밥을 먹였다고 하셨는데 집에서도 똑같았다. 신생아는 4시간이상 먹지 않으면 탈수가 올 수 있으므로 깨워서 먹이라는 지침이 있어서 오히려 알람을 맞추고 실제로 일어나서 깨워서 먹여야 했다.


새벽에는 그래도 그 덕에 1번만 일어나도 되는 건 너무 고마운 일이었지만, 푹 자지 못하고 2-3시간씩 쪼개 자는 것은 확실히 삶의 질이 떨어지기는 하는 일이었다. 그래도 다른 엄마들에 비하면 이정도는 푹 자는 거다, 고맙다 생각하며 지냈다.


새벽에 찡찡대지 않는다고 해서 울지 않는 아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아기의 의사소통수단이 되는 것은 유일하게 '울음'하나 이기 때문에 다양한 이유로 서연이는 울었을 것이다.

다만 그 의사소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 아빠만 이유를 몰랐을 뿐.


사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는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울면 기저귀를 봐주고, 맘마를 챙겨주고, 그래도 울면 달래서 재워주면 되는 것 아닌가.

기본 원칙은 이와 같지만 기저귀를 갈아주고 맘마를 챙겨주고 안아도 계속 우는 경우들이 꽤 있었다.


찾아보니 너무 피곤한데 잠을 못 자서 (아기는 잠드는 법을 스스로 모른다고 했던 것 같다.) 울기도 하고, 옷 말려 들어간게 불편해서, 혹은 심심해서, 혹은 배앓이를 하느라 등 다양한 이유들이 있었던 것 같다.


조리원에서 돌아오고 첫 주는 하루하루가 무서웠다. 아기는 우는데 이유를 모르겠고, 달래도 달래지지 않는 날들. 그러다 아기가 잠들면 다행이다 싶었고, 다시 일어나면 이번엔 또 어떻게 재워야 하나 싶고.


심지어 서연이는 첫 주에 분유를 먹이는데도 젖병을 물다가 자지러지게 울곤 했다. 내가 젖병수유하는 자세가 잘못되서 그런가, 사레라도 들리면 혹시나 우유가 기도로 넘어가면 어쩌나 싶었고, 이렇게 분유먹는게 불편해서 혹시 나중에 아이가 젖병거부를 하면 어쩌나 싶고.


밤에 서연이가 자서 내가 자도 괜찮을 때에도 혹시나 내가 자는 사이에 아기가 잘못될까봐 무섭기도 했고, 아기가 콜록 거리는 소리를 내면 감기에 걸렸나 싶었고.


물론, 지금도 아기의 미세한 변화에 가장 예민해지곤 한다.


눈이 부은 것 같은데, 혹시 결막염인가.

피부에 뭐가 올라온 것 같은데, 혹시 태열인가.

기침을 이렇게 하는데, 혹시 감기인가.

숨소리가 고르지 않은데, 혹시 숨쉬는게 불편한가.


실제로 숨소리가 조금 이상하다는 남편의 말에 새벽녘 내내 자지 않고 서연이 보초를 선 날도 있었다.


그렇게 무섭게, 피곤하게, 하루하루가 지나갔고 정말 신기한 일도 생겼다.


서연이를 안고 있으면 서연이의 배냇짓 한번에 미소 짓기도 하고

신생아시절에만 볼수 있다는 오- 하는 표정도, 얼굴이 빨개져라 오징어를 굽는 모습도 너무 예뻤다.

처음 태어났을 때보다, 산부인과에 있을 때보다, 조리원에 있을 때보다

집에서 내가 안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연이를 더 사랑하게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알았다.

아, 이렇게 자식에 대한 사랑이 생겨나는 거구나.


너무 작고, 너무 소중한 너.

아이를 끽해봤자 한달밖에 안 키웠는데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사람은 없구나.


모든 사람들은 이 과정을 거쳐서 내가 아는 지금의 누군가가 되었을 거고

이 과정은 보호자의 상당히 많은 애정과 정성과 시간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모든 사람들은 누군가의 많은 애정과 정성과 시간이 쏟아져서 지금의 누군가가 된거고

즉, 귀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다.


문득문득 얼른 서연이가 커서 뒤집고, 기고, 앉고, 걸었으면 좋겠기도 하고

의사소통이 통하는 나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동시에 지금 이 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지나가는 시간이 아쉽기도 하다.


이제 1개월 아기가 된 서연이.

벌써부터 신생아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밤에 울기 시작하면 대체 왜 우는 건가, 얼른 자라서 의사소통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하고.


서연이와 함께 있어야 하므로 혼자 카페를 간다거나, 남편과 둘이 데이트는 대체 언제 할 수 있는건가 아쉬운 날들도 있다.


그래도 서연이와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이라는 사실을 계속 되새기면서 이 모든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며 다른 날들을 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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